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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중국군 선전 집결 “10분이면 홍콩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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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중국남성 4시간 폭행

중국 “명백한 테러행위” 여론 격앙

시위대 공항 철수, 운항 정상화

18일 30만명 참가 대규모 집회

중앙일보

12일(현지시간) 중국 선전의 선전만 스타디움에 집결한 중국 보안군 차량들. [위챗 캡처]


홍콩 사태가 악화일로다. 12일과 13일 이틀간 항공편 580여 편 취소 등 공항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데 이어 13일 밤과 14일 새벽 사이엔 중국인 두 명이 시위대에 의해 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 당국이 14일 “테러리스트의 폭력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면서 중국 정부가 ‘반테러’ 명분 하에 국제사회를 상대로 홍콩 사태에 대한 무력 개입 근거를 쌓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중국과 홍콩 언론에 따르면 13일 밤 홍콩 국제공항 출국장 인근에서 한 중국인 남성이 시위대에 의해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에서 파견된 경찰이라는 의심을 받아 4시간 가까이 폭행을 당했다. 또 공항 상황을 취재하던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 기자 푸궈하오(付國豪)가 시위대에 두 손이 묶이고 머리에 피를 흘릴 정도로 구타당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홍콩의 중국 정부 연락사무소는 14일 성명을 내고 “시위대가 ‘평화와 이성, 비폭력’의 가면을 벗은 채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했다”며 “이는 테러리스트의 폭력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고 비난했다. 중국 당국은 13일에도 “테러리즘 조짐이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홍콩과 이웃한 중국 광둥성 선전에는 중국 무장경찰이 탄 장갑차와 물대포 등이 속속 집결하는 모습이 위성 사진으로 포착됐다. 미 콜로라도주 맥사 테크놀로지(Maxar Technologies)가 지난 12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엔 홍콩에서 불과 25㎞가량 떨어져 있는 선전만 스타디움에 군용 트럭이 빼곡하게 배치돼 있는 게 확인됐다. 중국 동부 전구 육군은 14일 위챗 ‘인민전선’을 통해 선전만 부근에 군용 도색을 한 차량들이 대기하는 사진을 공개하고 “10분이면 홍콩에 도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가 오후 삭제하기도 했다. 유사시 홍콩에 인민해방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됐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민간인권전선 등 홍콩 시위 지도부는 이날 시위대가 쓰는 메신저 텔레그램에 “추가적인 공항시위를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도부는 그러나 18일 빅토리아 공원에서 송환법에 반대하고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와 행진을 하겠다고 밝혔다. 민간인권전선은 30만여명이 시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당국의 개입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우리 정보기관이 중국 정부가 홍콩 접경에 군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다고 알렸다”며 미 정보당국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았음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모두 진정하고 안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트럼프 “군 병력 접경 이동 … 아무도 죽지 않기 바란다”

중앙일보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해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한 시위대가 13일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시위가 이어지면서 공항은 폐쇄와 운항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홍콩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중국 정부는 무장경찰과 인민해방군 등의 투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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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군용트럭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동영상도 리트윗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홍콩 사태에 대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또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개입해 인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홍콩 시위대는 온라인에 "항공편 취소와 여행 변경 등은 우리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는 사과의 글을 올렸다.

그럼에도 중국 내 여론은 중국인 폭행 사건으로 인해 험악해졌다.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는 “푸궈하오 진짜 남자”라는 글에서 “홍콩의 운명을 주목하던 기자가 비인도적 대우를 받았는데 도대체 신문의 자유는 어디로 갔나. 법치는 어디 있느냐”고 격분했다. 중국 네티즌 사이에선 “우리 기자가 얻어맞는 모습을 보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분노가 나왔다. “향기로운 항구의 홍콩(香港)이 이젠 더러운 냄새 나는 항구인 추항(臭港)이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중국은 지난주 이미 선전에서 1만2000여 무장경찰이 폭동 진압 훈련을 하며 무력 사용 가능성을 경고했다. 홍콩 정부의 요청만 있으면 언제든 시위 사태에 개입할 법적 근거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중국이 금명간 직접 개입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홍콩의 정치평론가 쑨자예(孫嘉業)는 14일 중국은 “말은 하되 행동은 하지 않는(動口不動手)” 단계라고 진단했다. 즉 말과 글로 경고하고 무력 시위로 위협을 주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홍콩 정부와 경찰의 처리 능력을 믿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 중국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과 홍콩 각계 인사 간의 ‘홍콩시국 좌담회’ 때 500여 홍콩 인사들이 중국 중앙정부에 홍콩 사태를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홍콩 시위가 격화하면서 중국 당국에 꼭 나쁘기만 한 게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쑨자예는 대륙의 중국인들에게 민주사회의 혼란 국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해 화웨이(華爲) 사건 이후 중국인의 단결심을 고취하는 이점도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인 양제츠(楊潔篪)가 13일 전격적으로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미·중 관계 전반에 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확인되며 양국은 무역 분쟁은 물론 홍콩 사태를 놓고도 의견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앞서 홍콩 사태의 미국 배후설을 “터무니없다”고 일축했지만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그간 미국을 줄곧 홍콩 시위의 배후 세력이라고 비난해 왔다.

일각에선 오는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중국으로선 홍콩 사태를 안정화할 필요가 있고 이에 따라 양 위원이 미국을 방문해 홍콩 사태 해결과 관련한 물밑 조율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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