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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ESC] 인생 최고 홍어애탕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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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미식 도시로 알려져

최근 많은 식도락가 방문해

덕자찜·소고기낙지탕탕이,·게살비빔밥 등

진짜 흑산도 홍어도 맛볼 곳 많아

홍어라면은 별미 중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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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월이 튀어나올 거 같다. 어디선가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호텔 델루나입니다.” 지난 8일, 폭염에 지친 전라남도 목포시. 장담하건대 지옥불도 이보다 뜨겁지 않다. 하지만 신기한 광경이 목포근대역사관 들머리에서 벌어졌다. 더위의 기습에도 화사한 봄날 마실 온 것처럼 환한 얼굴로 얘기 나누는 이들이 있었다. 여행객들이다. “여기가 그 드라마 촬영지래. 똑같네.” 그들이 말하는 드라마는 <티브이엔>(tvN)의 드라마 <호텔 델루나>다. 목포근대역사관은 드라마의 주요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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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시대의 격랑을 겪고 1000년을 산 <호텔 텔루나>의 주인공 장만월(아이유)처럼 목포근대역사관은 상처 입고 어딘가 헤졌지만, 당당하다. 낡았다고 폐기 처분하는 세상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1900년에 지은 목포근대역사관은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289호)로 한때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등으로 활용됐다. 목포의 대표적인 근대문화 유산으로 찾는 이가 많다. 관광 명소다. 하지만 목포의 매력을 단지 근대문화유산에서만 찾는다면 눈뜬장님과 같다. 진짜 목포의 얼굴은 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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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콰하게 취한 술꾼들이 모여 있는 곳. 유쾌하게 웃는 중년의 사내들만 가득하다. 지난 8일 밤 10시. 목포시 영산로에 있는 식당 ‘덕인집’ 풍경은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듯 사람도 장식도 낡았다. 근대문화유산 같다. 차림표엔 제철 맞은 민어찜, 홍어삼합 등이 적혀 있었다. 세종대 관광대학원 김성국 교수가 말했다. “홍어애탕도 꼭 먹어봐야지요.” 김 교수는 요리사, 음식 평론가 10여명과 1박 2일에 걸쳐 목포 맛 여행에 나섰다. 서울 신라호텔 등에서 20여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맛 평가 전문기이다.

홍어애탕은 홍어 내장을 갖은 채소와 함께 끓이는 음식이다. 자고로 내장 요리는 가난이 만든 지구별 최고의 맛이다. ‘그건 자네 생각이지’라고 타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울릉도 별미 오징어 내장탕은 못 먹은 이는 있어도 한 번 먹은 이는 없을 정도로 인기다. 먹을거리가 적었던 섬에서 내장은 훌륭한 식재료였던 것이다. 이탈리아에도 소 내장으로 조리하는 음식 트리파와 람프레도토가 있는데, 가격도 저렴해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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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투박한 접시에 홍어삼합이 나왔다. 맛이 절묘하다. 잘 삭힌 홍어가 돼지고기, 김치를 보듬어 미식가의 탄성을 끌어낸다. 이어 나온 홍어애탕. 주인 손춘석(74)씨는 “우리 집은 다 흑산도 홍어다. 문 연 지 40년이 넘었다”라고 말한다. 깻잎 등 채소가 수북하다. 도시에서 파는 홍어애탕은 빨간 양념이 반이다. 내장 특유의 냄새를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덕인집 홍어애탕은 맑다. 된장을 풀었다. “먹을수록 입술이 타들어 가는 듯한데 단맛이 느껴지고 맛있다.” 김 교수의 평은 극찬이다. 매콤한 맛 사이에서 단맛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온다. 손씨는 “홍어 내장, 껍질, 뼈 등을 맹물에 넣어 푹 익힌 후 나중에 채소와 된장을 넣는다”고 조리법을 설명한다. 김 교수는 “홍어애탕은 맑게 조리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인다.

목포는 흑산도 홍어를 비교적 쉽게 맛볼 수 있는 동네다. 새벽 4시면 활어 위판장엔 막 잡아 올린 대량의 흑산도 홍어가 주인을 기다린다. 경매사와 중매인, 상인들 수백명이 모여 손가락을 폈다 접다 하면서 도매가를 정한다. ‘목포홍어닷컴 금성수산’의 채승용 대표는 “홍어 금어기가 끝났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때부터 많이 잡힌다”고 설명한다. 흑산도에선 신안군청에서 조업을 허락한 홍어잡이 배가 5척 있다.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흑산도 홍어는 귀하다. 더구나 1년에 새끼를 두 마리 정도만 낳는다. 연평도, 대청도 등에서도 홍어가 잡히지만, 흑산도 홍어를 상급으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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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선 ‘홍어 암컷은 한겨울에 먹고, 수컷은 여름에 먹는다’는 말이 있다. 채 대표는 “산란하는 때가 금어기인데, 금어기 지난 암컷은 영양소가 다 빠져나가 맛이 없다”며 하지만 “수컷은 아무 때나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목포 맛 여행자 중 한 명이 “수입 홍어를 흑산도 홍어라고 속여 파는 곳이 많다”고 묻자 그가 수컷 홍어 한 마리를 들어 보인다. 홍어엔 네 손가락을 합친 크기의 수산물 이력제 인증 카드가 붙어 있다. “속일 수가 없죠. 어부 이름까지 나오는데요.” 해양수산부는 2008년부터 수산물 이력제를 도입했다.

목포에서 맛볼 수 있는 게 홍어만 있는 건 아니다. 맛의 고장 전라도에서도 으뜸인 곳이 목포다. “덕자 2㎏짜리입니다. 이 정도면 중자죠.” 식당 ‘소도’ 주인 김애정씨가 덕자찜을 만들면서 말했다. 빨간 양념이 잔뜩 올라간 덕자찜은 보기보다 맵지 않다. 뻘건 양념을 걷어내고 살을 후비면 설탕처럼 반짝이는 하얀 속살이 나온다. 담백하다. 텁텁하지 않다. 김씨가 비결을 말했다. “불린 고추를 말려서 빻아 써요.” 흔히 덕자를 병어와 혼동하는 이들이 있다. 둘은 사촌지간 정도 되는데, 차이가 있다. 활어 위판장 박홍준 수석경매사는 “꼬리가 다르다. 덕자는 꼬리가 병어에 견줘 더 길고 색이 검다”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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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살을 발라내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다음 밥에 비벼 먹는 게살비빔밥도 목포의 명물이다. 외지인에게 유명한 식당은 ‘장터식당’이지만, 최근 뜨는 곳은 ‘미락식당’이다. 먹방 <맛있는 녀석들> 등에 소개되어 유명해졌다. 사장 이남수(59)씨는 “비파(비파나무 열매. 모양이 악기 비파를 닮아 붙어진 이름)로 청을 담아 넣은 게 우리 집 맛의 비결”이라고 자랑한다. 소고기와 산낙지가 한데 어우러진 ‘소고기낙지탕탕이’를 파는 곳도 있다. 별미다. ‘갯내음’이 대표적인 식당으로 꼽힌다. 육고기와 바다 생물을 참기름 등으로 비벼 먹는데, 먹다 보면 ‘씹기 대회’에 출전한 것처럼 열을 내게 된다.

‘모정명가’는 민어, 병어, 가오리, 홍어 등 신선한 회가 한 상 떡 벌어지게 나오는 한정식집이다. 해산물 한정식은 여러 가지 빛깔의 생선을 한 번에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폭염의 고통을 덜어준다. 도톰한 민어는 감칠맛이 풍부하고, 껍질은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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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여행은 밤에도 이어진다. 한 잔 술에 별이 지고 뜨는지 모른다. 다음날 해장할 만 한곳을 찾는 것도 재미다. 김성국 교수 일행이 9일 아침 8시에 도착한 식당은 ‘조선쫄복탕’이다. 윤금순(60)·윤영미(49) 자매가 운영하는 이 집 졸복탕은 특별하다. 압력솥에 익혀 뼈까지도 케이크처럼 부드럽게 씹히는 졸복을 다시마와 갖은 채소를 넣어 우린 육수와 합쳐 조리한다. 한번 걸러내 더 부드럽다. 어죽 같다. 영미씨는 “찹쌀 대신 녹두를 조금 넣는다”라고 한다. 식초를 넣어 먹으면 처음과는 다른 맛을 경험한다. 이집은 매실청과 비파청, 막걸리로 만든 발효식초를 사용한다.

지난 3월에 문 연 ‘신상 맛집’인 ‘목포라면홍어라면’에선 홍어가 든 라면으로 해장이 가능하다. 참으로 묘한 맛이다. 홍어탕에 라면사리 넣은 꼴이 아니다. 사장 추숙(62)씨는 “홍어 내장으로 라면 국물을 만든다”고 말한다. 마치 덕인집 홍어애탕에 푸짐한 면 사리가 들어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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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일에 지친 이들이 찾는 곳이 ‘남성각’이다. 보리마당마을에 자리 잡은 남성각은 목포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1970년대 가정집에 온 것처럼 복고풍 가구가 가득한 이곳은 커피, 오미자주스 등을 판다. 마당엔 비석 두 개가 있는데, 공덕비라고 한다. 주인 박수현(62)씨는 “일흔이 넘으신 시아버지의 봉사활동을 기린 공덕비”라고 말한다. 시아버지 김덕진(74)씨는 조선소를 운영하면서 경로당 등을 지어 동네에 기증했다고 한다.

도저히 ‘1박 2일’로는 맛의 도시 목포를 다 알 수 없다. <호텔 델루나>의 장만월처럼 1000년은 살아야 그 맛을 다 볼 수 있을까? 우리 수명이 귀신과는 다르니 이룰 수 없는 소망이다. 하지만 목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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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전남)/글·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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