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시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침을 뱉고 조롱한 청년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 사죄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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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상징과도 같은 ‘평화의 소녀상’을 조롱한 청년들을 지난달 24일 용서했다. 며칠이 지나 만난 이옥선(92) 할머니는 담담하게 위와 같이 말했다.
지난달 6일 20~30대 한국인 남성 4명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상록수역 광장에 있는 소녀상에 침을 뱉으며 조롱하고 일본어로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소녀상 민간 관리단체는 이들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경찰 조사 후에도 “사과 없이 처벌받겠다”고 주장하던 이들은 결국 지난달 24일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을 방문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당시 할머니들은 엄하게 청년들을 꾸짖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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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에서 관리되고 있는 소녀상은 30% 뿐
할머니들은 “용서했다”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고령에 건강까지 좋지 않은 할머니들이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는 게 나눔의 집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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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소녀상에 대한 모욕은 끊이지 않고 있다. 소녀상에 침을 뱉은 청년들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같은 자리에서 한 남성이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는 사진이 안산시청 홈페이지에 제보됐다. 지난해 8월에는 한 10대가 ‘평화의 소녀상’을 돌로 툭툭 치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돌았고, 2017년에는 소녀상 발목에 자물쇠를 연결한 채 자전거를 세워놓은 사진이 공개돼 공분을 샀다.
문제는 현행법상 소녀상을 모욕한 데 대한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모욕을 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돼야 하는 현행 모욕죄 성립 요건 때문이다. 아직까지 동상을 모욕의 대상으로 인정한 판례는 없다. 동상을 파손했을 경우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고 보기 어려워 대부분 불기소 처분 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국 소녀상 112개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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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 만들어진 소녀상은 대부분 시민 모금으로 세워져 보호에 한계가 있다. 안정적으로 관리할 주체가 불분명한 탓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관리 책임을 지도록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공조형물은 공공시설에 설치하는 조형물로,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관리할 의무가 있고 함부로 철거하거나 이전할 수 없다.
현재 전국에 있는 112개의 소녀상 중 32개만이 공공조형물로 관리되고 있다. 지방의회에서 조례를 만들어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할 경우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모니터링 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현재 이에 대해 논의 중인 지자체가 있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위안부 피해자 돕기에 앞장서온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는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지정하는 30만명 서명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현재 19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참했다.
이를 지켜보는 할머니들은 “내가 살아있어도 나를 부정하고 사실을 왜곡하는데, 내가 죽으면 더 쉽고 빠르게 할 거 아니냐”며 걱정한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소녀상 훼손은 단순한 동상 훼손이 아닌, 살아있는 인격체(할머니들)를 모독하는 것”이라며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달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진척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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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뿐 아니라 남은 가족도 피해자"
할머니들의 또 다른 걱정은 남은 가족들이다. 할머니들이 살아있는 동안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금이 나오지만, 눈을 감은 후에는 가족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나 지원금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여성가족부에서는 할머니들에게 매달 140만원 가량의 생활안전지원금과 병원비ㆍ간병비를 지급한다. 여기에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지자체에서 주는 20~70만원 정도의 지원금을 합하면 1인당 한 달에 300만원 정도가 지급된다.
오랜 시간 할머니들을 면담해 온 안 소장은 “할머니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피해자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안 소장에 따르면, 할머니들의 가족들은 생활고를 겪거나 ‘어머니가 위안부였다’는 피해의식을 성인이 된 현재까지 안고 살기도 한다. 자녀가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건 모두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위안부여서 내가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고 직장생활도 못했다. 내가 이혼을 한 것도 엄마가 위안부였기 때문이다’ 라며 할머니들을 원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 소장은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너무 안타깝다”며 “가족들에게도 적절한 지원 및 심리적 치료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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