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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인터뷰] "위안부 증거는 바로 나"…김복동 할머니의 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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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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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송원근 영화 '김복동' 감독,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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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김복동 할머님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에 나오셨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모시고 싶어도 모실 수가 없습니다. 지난 1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계속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고 김복동 할머님의 고단한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생을 기록한 영화가 개봉이 됐습니다. 이 영화를 직접 만드신 송원근 감독님 그리고 김복동 할머님과 항상 함께하셨던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안녕하세요?

▶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안녕하세요?

▷ 주영진/앵커: 조금 전 영상을 보셨는데 우리 윤미향 대표님은 또 할머님 생각이 나시겠습니다.

▶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또 울컥하네요.

▷ 주영진/앵커: 할머님 하면 어떤 장면, 어떤 모습이 또 어떤 말씀이 기억이 나세요?

▶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사실은 할머니하고 28년을 함께 활동을 하면서 지냈기 때문에 밖에서 거리에서 강인했던 모습보다는 저에게 가장 지금 그래도 가슴 아프게 남아 있는 모습은 지쳐서 집에 들어왔을 때 거의 실신처럼 누워계시던 모습들. 그런 영상이 좀 많이 남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그게 저에게 또 우리 한국 사회에 주는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피해자가 그렇게 몸소 거리를 쫓아다니는 그런 어떤 뭐랄까 가슴 아픈 현실 그게 많이 남을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도 늘 활동가들에게는 따뜻한 말. 고맙다. 이 쓰잘 것 없는 나를 이렇게 떠받들어서 이렇게 높이 존중받게 해 주고 이렇게 세계를 향해 날개를 펼칠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고맙다. 이런 칭찬도 늘 하셨고요.

그리고 늘 어려운 사람을 보면 당신의 지갑을 열어서 저를 먼저 부르셨어요, 늘. 돕자. 그리고 지난번 여기에 출연하셨던 날. 그날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가 대표 영상 찍어라. 아니, 왜요. 우리 제일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이 할미가 함께한다는 그 영상 찍자. 그러니까 분장하신 상태에서 그 모습 그대로 영상을 담기도 하셨던 그런 모습들이 저한테 깊이 남아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김복동 할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송원근 감독님은 이 영화를 내가 왜 꼭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된 거죠?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김복동 할머님께서 평소에 자신께서 살아오셨던 어떤 기록이 그냥 이렇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후세에 좀 남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하시고 저 역시도 김복동 할머니께서 걸어왔던 길이 그냥 이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없어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게 실제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 남을 수 있고 마음에 좀 새겨질 수 있도록 할머니가 걸어왔던 길을 그 역사 속에서 제대로 한번 좀 짚어주자. 그런 마음이 좀 있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언제 기획을 하시게 된 건가요.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이 다큐멘터리는 10월에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와 미디어몽구와 함께 만나서 이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 보자라는 얘기는 그때 나눴고요.

▷ 주영진/앵커: 지난해 10월이면 아직 할머님 돌아가시기 전이네요?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전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래서 할머님과 말씀도 나누시고 그러셨겠네요.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나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때 할머니께 이 영화를 제가 만들려고 합니다라고 말씀드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그때 말씀드렸을 때 이거를 만든다고? 그냥 그렇게 웃으셨던. 반신반의하셨던 그런 반응이셨습니다.

▷ 주영진/앵커: 영화를 만들다 보면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영화고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그러한 영상이나 목소리까지 아마 찾아내셨을 텐데. 그러면 그 순간은 그냥 생각했던 김복동 할머님이 아니라 감독님도 미처 몰랐던 김복동 할머님 그런 장면이 있었을 것 같아요.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네, 맞습니다. 거의 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이 저도 몰랐던 김복동이라는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그 사람의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이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할머님께서 92년도에 옆에 계시는 윤미향 대표하고 처음 만나서 이렇게 당신께서 어떻게 끌려갔고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를 오디오 파일로 주고받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디오 파일인데. 그 말씀을 나누시는 그 목소리가 굉장히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시에 할머니가 얼마나 답답했었는지 뭐 20살 후반에 윤미향 대표의 목소리도 잘 모르지만 이걸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서툰 그런 목소리들. 할머니께서 16살에 끌려갔다가 돌아와 보니 23살이라 말씀하실 때 그 답답함 이런 부분들이 굉장히 잘 느껴졌고 그런 답답하게 제가 느꼈던 걸 관객들도 똑같이 느끼게 해 주고 싶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 목소리 파일, 오디오 파일이 이번에 처음 공개가 된 건데 기억나세요, 그 순간이?

▶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그럼요. 그러니까 오디오 속에도 할머니가 라이터를 켜는 여러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요. 저하고 1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 역사에 대해서는. 그 한 시간이 끝나고 나서 담배 재떨이에 그 담뱃재가 수북이 쌓였어요. 그러니까 힘겨워했는지 그리고 굉장히 떨고 있었고 할머니도, 저도 떨고 있었고.

▷ 주영진/앵커: 그 오디오 파일을 계속 간직해 오셨던 겁니까, 윤 대표님께서?

▶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저희는 초기에 할머니를 방문할 때 영상 카메라나 그게 90년대에는 없었으니까, 저희들에게는. 그러니까 저희들이 가장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록이 그 녹음기였어요. 그러니까 할머니들을 만날 때마다 녹음기를 갖고 가고 피해자가 허락을 하면 녹음 스위치를 눌러서 그러니까 본인들이 내가 하는 말이 녹음이 되고 있구나라는 걸 알 때는 더 그게 가슴이 무겁게 그게 다가오고 입을 여는 게 힘들 수밖에 없잖아요.

▷ 주영진/앵커: 감독님은 이 오디오 파일 어떻게 찾아내셨습니까?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그때 이제 정의기억연대와 공동으로 기획을 했기 때문에 저희가 이제 협조 요청을 얻어서 김복동이라는 이름이 있는 자료들은, 쓰여 있는 것은 다 찾았고요. 그거를 확인을 했죠. 일일이 확인하면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는데 아, 이 목소리가 할머니와 윤미향 대표의 목소리구나라는 걸 나중에 확인을 받고 굉장히, 뭐라고 해야 하지. 굉장히 저도 떨렸습니다. 이런 파일이 아직 살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감독님은 어떤 마음이셨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는데 그러면 지금 방금 저희가 말씀드렸던 최초로 김복동 할머니께서 윤미향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나도 위안부 피해자였다라고 고백하시는 그 목소리를 지금 이 순간에 다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윤 대표님 저 이야기 듣고 나서 한 시간 동안 아까 녹음하셨다고 했는데. 그때 어떠셨는지 기억나세요? 어떤 마음이셨어요?

▶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할머니가 중간에 이제 많이 우시기도 했어요. 우실 때는 처음에 가서 겪을 때하고 그리고 처음 당하고 나서 죽으려고 했을 때.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셨고 해방 이후 돌아오고 나서 엄마하고 가족들에게 내가 피해를 끼쳤다는 것을 말씀하실 때 더 참담한 심정이 저에게도 좀 전해왔어요. 아, 굉장히 힘든 삶을 사셨구나. 그것을 어떻게 삭이고 사셨을까.

그래도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시기로 결정해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이야기를 드릴 수밖에 없었고요. 제가 그때 놀란 것은 할머니 사실은 이미 피해자들 몇 분이 신고를 하셨고 그리고 8월에 아시아연대회의도 있고 수요일에 수요시위도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함께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했을 때 해야지, 일본 정부에게 사죄를 받아야지 했던 그 단단했던 목소리 그것도 사실은 잊히지 않습니다.

▷ 주영진/앵커: 감독님은 영화를 만드실 때 이제 이런저런 자료를 다 찾으셨고요. 이제 이른바 편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편집을 하고 이게 기본적으로 시간이, 상영 시간이 한 몇 분 정도 되나요.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1시간 40분입니다.

▷ 주영진/앵커: 1시간 40분, 100분 정도 되는 분량인데 편집을 하시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점이 있다고 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김복동이라는 한 사람의 활동을 단순하게 피해자로서만 우리가 비치게 이 영화를 만들면 다른 영화들과 차별점이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하게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우리가 지금 기억을 하고 있고 이 사람의 이름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당시에 어떤 피해자로서만 우리가 기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피해자를 딛고 넘어서서 오히려 다른 피해자들을 보듬어 안는다거나 다른 곳에 가서 공식적으로 계속해서 일본 정부에 사죄를 요구한다든가 하는 그런 강인한 모습. 그리고 그 속에 있는 할머니의 희망적인 메시지, 이런 부분들을 보여줄 수 있도록 계속 좀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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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을 그린 영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극 영화만 하더라도 제가 기억나는 게 아이 캔 스피크, 허스토리, 귀향, 이런 영화들이 있었고 다큐멘터리 영화도 이미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송 감독님은 그 영화들과 김복동 할머님에게만 초점을 맞춘 이 영화,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차이점은 가장 크게 전체 27년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역사 속에서, 27년간의 역사 속에서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그 역사 속에서 어느 지점에 어떻게 있었나를 보면서 이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어떤 활동을 했었나를 설명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 역사 속에서 김복동의 활동을 따라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그냥 피해자로서만 머물러 있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역으로 역적으로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다른 피해자들을 돕는 그런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저희가 이 기록들을 통해서 확인을 한 것이죠. 확인된 기록들을 잘 설명을 그러니까 잘 편집을 하고 구성을 해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부분이 가장 좀 주안점을 뒀습니다, 다른 영화와 비교가 되려면.

▷ 주영진/앵커: 위안부 피해자를 넘어서 여성 인권 운동가, 평화운동가 이렇게 살아오셨다고 하는 자막이 아까 영상에서도 나갔습니다. 김복동 할머님 말씀 나누다 보니까 조금 무겁기도 하는데 할머님 참 밝으셨죠. 유머도 많으셨죠?

▶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그렇죠, 그러니까 방송에 그때 오셨을 때도 이 방송 밖에 나가면 농담하시고 또 욕도 하시고 굉장히 재미난 한 여성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사셨던 것 같아요. 제가 할머님 그때 다대포에서, 부산 다대포에서 첫 번째 만나고 나서 계속 자주 찾아뵈었는데 그때마다 바닷가에 가서 회 한 사발 놓고 이제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소주 놓고 이렇게 마시면서 할 때가 있었는데 그 모래사장에서 춤을 이렇게 추면서 놀기도 하셨고.

그런데 그게 언제부터 자신의 삶을 그렇게 노는 거, 재미난 거 이런 것을 삼가시게 되고 더 강인한 모습으로 보이시기 시작했느냐 하면 일본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할머니가 내가 이렇게 함부로 웃을 수도 없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라고 각오를 다지셨고 그래서 늘 강인한 모습으로 그렇게 지내셨는데 그래도 우리들과 함께 지내실 때는 할머니 집 공간에 오면 그렇게 농담을 잘하시는 분이셨어요.

▷ 주영진/앵커: 한일 위안부 합의 때 그 이후에 할머님 말씀이 상당히 강해지셨을 것 같은데 그 당시의 영상을 저희가 잠깐 보고 나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 당시 할머님 그리고 그 이후에 끝내 사죄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실 때 마지막까지 함께하셨는데 할머님이 마지막에 하셨던 말씀 혹시 기억나십니까?

▶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그때 할머님은 비록 내가 병상에 누워 있지만 내가 이겼지? 그러니까 저에게 그게 아직 잊히지가 않아요. 내가 이겼지? 뭐니 뭐니 해도 아베가 진 거지? 그러니까 당신이 이미 얼마 후면 우리 곁을 떠난다는 걸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베 정부는 사죄도 배상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 할머니는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계셨어요.

내가 살아 있을 때 해결을 안 할 것이다, 저 사람들은. 그래도 내가 이겼지라는 것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의 그 목소리에 함께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그렇게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주영진/앵커: 송원근 감독님,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 또 앞으로 보실 분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갖고 가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 말씀 한번 꼭 듣고 싶네요.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할머니께서 계속 말씀을 하셨던 게 뭐였냐 하면 내가 이렇게 활동을 하는 이유가 내가 지금 나의 문제에 대해서 사죄를 받고 싶은 것도 있지만 다시는 이 땅에 나 같은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말씀을 계속하셨었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안다고만 생각하시지 말고 이 영화를 통해서 자신이 몰랐던 부분도 다시 한 번 깨달아보시고 할머님께서 오래도록 바라셨던 미래 세대를 위한 마음, 그런 부분들을 같이 좀 느끼셨으면 좋겠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그 희망이 무엇인지도 많이 좀 느껴서 김복동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가슴 속에 잘 들어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두 분과의 말씀은 이쯤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 김복동 할머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 김복동이라는 영화를 만드신 송원근 감독님, 김복동 할머님과 28년을 함께하시면서 투쟁을 함께해 오셨던 윤미향 대표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송원근/영화 '김복동' 감독: 고맙습니다.

▶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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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두 분과 말씀을 나누면서 저는 시청자 여러분께 이 말씀을 꼭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이 8월 13일이죠? 내일은 8월 14일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8월 14일은 세계 위안부 기림의 날입니다. 1991년 8월 14일에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한 그날을 기려서 만든 날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내일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이 일본대사관 앞에 가서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매주 수요일에 이렇게 목 놓아 외치지 않으셨습니까? 수요시위가 시작된 지 꼭 140회인가요?

▶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1,400회입니다.

▷ 주영진/앵커: 1,400회가 되는 날입니다. 내일이 이런 뜻깊은 날인데 뜻깊은 날 앞두고 김복동 할머님 영화 이야기할 수 있어서 주영진의 뉴스브리핑도 오늘은 정말 뜻깊은 날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복동 할머님의 영화 속에 담긴 노래. 꽃이라는 노래입니다. 가사가 참 가슴에 와닿는데 이 노래와 함께 김복동 할머님의 살아계실 적 활동하던 모습, 육성을 담아서 저희가 영상을 만들어봤습니다. 이 영상 보시면서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도 다시 한 번 김복동 할머님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오늘은 여기에서 인사드립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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