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3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침략전쟁 사죄는커녕 표현의 자유 억압" [김현주의 일상 톡톡]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 규탄하는 목소리, 국내는 물론 일본 자국에서도 높아져 / 문화예술제 참여 세계 각국의 작가들 "일부 정치가에 의한 전시·상영·공연에 대한 폭력적 개입, 폐쇄로 몰아세우는 협박·공갈에 항의한다" / 日 언론도 비판 사설 쏟아내…소녀상 전시 중단 '전후 日 최대 검열 사건' / 예술인들 SNS에 '소녀상 되기' 운동 벌여…예술가 자율성, 명예 훼손한 행위라는 점에 공감하는 모습 / 아베 정부 국내외 비판에 귀 기울이고 사죄해야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자국에서조차 커지고 있다. 문화·예술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돼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특히 예술제는 제도권에서 다루지 못하는 갈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다.

현재 일본 우익 세력들은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역사 왜곡을 일삼는 아베 정권으로서도 소녀상 전시는 마주 하고 싶지 않은 '역사적 진실'이었을 것이다.

이 기획전에는 소녀상 말고도 일본의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조항을 주제로 노래한 전통 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 전 일본 왕의 초상화가 불태워지는 영상작품 등도 전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문화예술제에 참여한 세계 각국의 작가 72명은 성명을 통해 "일부 정치가에 의한 전시, 상영, 공연에 대한 폭력적 개입과 (전시장) 폐쇄로 몰아세우는 협박과 공갈에 우리들은 강하게 반대해 항의한다"고 밝혔다. 일본 자국 언론도 날 선 비판의 글을 쏟아냈다.

일본 문화예술계와 언론이 지적한 대로 소녀상 전시 중단은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이다. 자국 헌법은 물론 각종 국제협약이나 권고에 배치되는 '표현의 자유' 침해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전 세계 예술인과 여성주의 운동가들이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려 '소녀상 되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집권 세력이 압력을 행사해 전격적으로 시행된 전시 중단이 예술가와 예술제 기획자의 자율성과 명예를 훼손한 행위라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아베 정부는 국내외의 이러한 비판에 귀 기울이어야 한다며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는커녕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을 통해 자기 세력을 결집하려는 시도는 국제사회는 물론 자국 내에서조차 용납되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세계일보

일본 아이치(愛知)현에서 개최 중인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2019’에서 김운성·김서경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이 포함된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전시가 지난 3일 중단됐다. 철거되기 전 전시됐던 평화의 소녀상 모습. 뉴시스


세계 5대 비엔날레로 평가받고 있는 광주비엔날레가 7일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에 대해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이날 성명을 통해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포함된 '표현의 부자유-그 이후 기획전' 중단은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저지하고 검열한 폭력적인 사안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표현의 부자유-그 이후'는 그동안 일본의 공공미술관에서 전시 중지를 당하거나 철거당한 작품들로 기획된 전시이다"며 "이번 전시 중단 사태로 인해 예술가와 예술작품, 기획자와 전시가 개최된 지자체의 자율성과 명예를 훼손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제도권 안에서 다루기 힘든 정치·사회적인 이슈를 다양한 시각예술 담론으로 펼쳐왔다"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전시 중단 결정은 비엔날레의 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문화·예술적 창작이 정치적 의도에 의한 정쟁의 도구가 돼서는 안되며 예술적 표현이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아이치 트리엔날레 측은 이 같은 행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하루속히 전시를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 예술가 표현의 자유 저지하고 검열한 폭력적 사건"

이런 가운데 아이치현이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내용의 협박문을 받았다며 경찰에 신고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7일 보도했다.

아이치현은 트리엔날레 전시회장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예술문화센터에는 지난 2일 '소녀상을 빨리 철거하라. 그렇지 않으면 휘발유를 갖고 전시를 방해할 것'이라는 내용의 팩스가 도착했다며, 지난 6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이 같은 아이치현의 소녀상 전시 중단 결정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특히 전시 주최측 및 작가들은 항의 성명 등을 발표하며 전시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전시 운영요원들은 지난 6일 아이치현청을 방문해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 앞으로 공개 질의서를 전달했다.

세계일보

4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 문화예술센터 밖에서 일본인들이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 중단을 비판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나고야=연합뉴스


이들은 △소녀상 전시 중단을 결정한 구체적 이유 △이 같은 결정에 이른 경위 의사 결정에 대한 규칙 공개 △항의 전화에 대한 대책 등 7가지 항목에 대해 오는 10일까지 문서로 답변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녀상 전시 중단 통고는 제대로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구두상으로만 이뤄졌다"며 "하루빨리 전시 재개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소녀상 전시 중단과 관련해 이번 트리엔날레 국제예술제에 참가한 작가 총 72명도 지난 6일 소녀상 전시를 중단한 데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전시를 중단한 것은 작품 감상의 기회를 빼앗아 활발한 논란을 차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내에서도 '표현의 자유 억압' 비판의 목소리 높아

'표현의 부자유' 전시가 중단된 것과 관련해 도쿄신문이 7일 '사회의 자유에 대한 협박'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도쿄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표현의 부자유'를 상징하는 무서운 사태"라고 규정했다.

사설은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싶다"고도 전했다. 이어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과 예술제 교부금에 대해 신중한 검토 의사를 밝힌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발언을 거론한 뒤 "정치와 행정의 책임자는 다양한 의견과 표현을 존중하고 폭력적 행위를 경계하는 입장에 있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예술가나 미술관의 관계자는 결코 위축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날 '헤이트(증오)는 표현의 자유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헤이트 행위'라고 규정하는 억지를 부렸다.

산케이는 "폭력과 협박이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한편 기획전 방식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평화의 소녀상'' 등 전시를 중단한 것에 항의해 본전시에 참여한 박찬욱·임민욱 작가가 4일 작품 자진 철수 의사를 밝혔다. 사진은 두 작가의 전시장에 붙이려던 ''검열에 반대한다''라고 쓴 행사 소식지. 연합뉴스


산케이는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의 통합'인 천황(일왕)과 일본인에 대한 헤이트 행위로밖에 말할 수 없는 전시가 많았다"고 도 했다.

이 신문은 "버너로 쇼와(히로히토) 천황(일왕)의 사진을 태우게 하는 영상을 전시했다"고 하는가 하면 "소녀상도 전시돼 작품 설명 영문에 'Sexual Slavery(성 노예제)'도 있었다"며 "사실을 왜곡한 표현"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쳤다.

산케이는 "이번 전시와 같은 헤이트 행위가 '표현의 자유' 범위 내에 들어간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며 '헤이트'의 의미를 정반대로 해석했다.

◆'극우 성향' 산케이신문 "기획전 방식에 큰 문제 있었다"

한편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안을 공포한 7일 일본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정의기억연대 등은 이날 정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제1399차 정기 수요시위'를 열고 "일본 정부는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를 되돌려 달라"고 촉구했다.

오전부터 내린 비가 정오 무렵 겨우 그친 가운데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시민 등 1000여명(주최측 추산)은 노란 나비 모양 부채, 손팻말을 든 채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를 지켰다.

평소 할머니들이 앉는 자리에는 꽃다발이 놓였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겪은 뒤 지난 4일 별세한 한 할머니를 기억하고자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는 글귀가 담긴 영정 사진이 놓였다.

세계일보

해외 예술가, 여성운동가가 참여한 '소녀상 되기' 운동. 트위터 갈무리


참석자들은 성명서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제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면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역사 왜곡을 중단하고 올바른 역사를 교육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오늘이 마지막 수요일이기를', '할머니들의 광복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역사 앞에 일본은 사죄하라' 등의 손팻말을 높이 든 채 일본 정부에 항의하는 뜻으로 힘껏 함성을 질렀다.

이날 오전에는 잇단 경제 보복 조처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일본 정권을 규탄하는 항의 행동과 기자회견도 열렸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일본대사관이 입주한 종로구의 한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부정하는 아베 정권을 규탄했다.

이들은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은 국제법적 상식"이라며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온 국민의 분노가 큰 상황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원 판결이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항의로 법원행정처에서 진행하는 일본최고재판소와의 모든 사법 교류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시민사회단체 "일본 정부, 일본군 성노예제 진상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

이들은 아베 총리 얼굴에 '압류물 표시'라고 적힌 붉은색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은 서울 중구 한국미쓰비시상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식민지배와 강제징용에 대한 사죄·배상 없는 전범 기업 미쓰비시는 떠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미쓰비시는 일제 식민지배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군수 기업인데도 사죄는커녕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채 무시하고 있다"며 항의했다.

대학생들은 전쟁 범죄에 대한 사죄, 반성 없는 아베 총리를 규탄하자는 의미로 '평화 행동'에 나서자며 서울 신촌역 일대에서 캠페인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세계일보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이 6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부평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거부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청년정당 미래당은 "방사능 안전성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고, 신뢰할 만한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은 현재의 도쿄올림픽을 거부한다"면서 "아베 정권의 방사능 올림픽 강행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