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조각한 김운성(왼쪽)·김서경 작가 |
부부 조각가 김운성(55)·김서경(54)은 아직 실낱같은 희망을 움켜쥐고 있다. 지난 3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단됐지만 아직 작품 철거 통보를 받지 않아서다.
김운성 조각가는 5일 매일경제신문과 통화하면서 "보통 국제예술제에서 작품 철거는 작가가 직접 하는데, 아이치 트리엔날레 조직위원회로부터 철거하라는 어떤 공문이나 전화, 문자가 아직 오지는 않았다"면서 "오늘은 전시 미술관(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이 휴관일인데도 일본 국민의 전시 중단에 대한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전 세계 문화예술인들의 비난이 쇄도해서 조직위가 사면초가에 빠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참여한 전 세계 작가들이 6일 일본 정부와 조직위에 작품 검열과 표현의 자유 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참여 큐레이터들은 지난 3일 전시가 중단되자마자 "외압으로 눈앞에서 사라진 표현을 모아 현대 일본의 '표현의 부자유' 상황을 생각하자는 기획을 전시 주최자가 스스로 탄압하는 것은 역사적 폭거"라면서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시가 중단 된 소녀상 [나고야 =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전시에 참여한 일본 작가 나카가키 가쓰히사는 도쿄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 "(일본 우익세력이) 소란을 피우면 전시회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김 조각가는 "(트리엔날레 조직위) 본인들이 내린 결정을 번복하기 쉽지 않겠지만 항의가 지속된다면 혹여나 전시를 재개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전혀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트리엔날레는 10월 14일까지 전시되니 아직 시간은 많다"고 말했다.
작품 설치와 개막식을 위해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참여했던 그는 지난 3일 귀국하자마자 전시 중단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전시 중단 압력과 우익세력의 항의 때문에 철거 위압감을 느껴 일정보다 하루 더 있다가 왔는데, 조직위가 내게 어떤 통보도 없이 현지 기자회견을 통해 내 작품 주변에 가벽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무래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문서나 기록을 남기는 게 불편해서 그런 것 같다."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평화의 소녀상'과 안세홍 작가 사진 작품이 전시된 기획전 주제는 '표현의 부자유, 그 후'. 김 조각가는 "소녀상 철거는 일본 스스로 '표현의 부자유'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1일 개막 후 3일 동안 일본 관람객이 굉장히 많이 와서 성의 있게 소녀상을 감상하고 갔다. 공격적인 행위가 전혀 없었고 같이 (위안부 아픔을) 슬퍼해주고 울어줬다. 일본분들과 위안부 실체와 고통을 서로가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고 싶었는데 일본 정부는 이 자체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 일본 정치인들이 끝내 전시를 저지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저들 정치인은 평화를, 진실을 알려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아내와 함께 2011년 11월 14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1000번째 집회를 기념하기 위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한 '평화의 소녀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같은 조각상 90여 점을 조각해왔다. 2012년 도쿄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잘라(JAALA)국제교류전에 20㎝짜리 축소상을 전시했다가 사흘 만에 철거된 전례가 있다.
이번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으로 올해 4회째인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전후 일본의 최대 검열'이라는 오명과 함께 국제 예술가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국제예술제는 도요타로 대표되는 일본 자동차 산업 중심인 나고야시의 예술을 통한 도시 혁신을 위해 2010년 시작됐다.
한편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 파문이 커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문화예술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돼야 하며, 조속히 정상화되기를 희망한다"면서 "정부의 공식 입장을 아이치 트리엔날레 조직위에 전달하고, 나고야 대한민국총영사관과 도쿄 한국문화원을 통해 현지 상황을 긴밀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될수록 문화·체육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