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전시 중단에 잇따르는 비판론...일본 정부는 발뺌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 주최 측이 외부 압력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표현의 부자유전·그후’를 전시 사흘만에 중지한 것을 두고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4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손에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들려있다. 지난 3일 아이치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는 개막 사흘 만에 ‘표현의 부자유-그후’ 전시 중단을 결정했다. 나고야|연합뉴스

이 전시에 참가한 조형작가 나카가키 가쓰히사(中垣克久·75)는 5일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가 출품한 작품 ‘시대의 초상’은 2014년 도쿄도미술관에서 전시됐으나 ‘헌법 9조 지키기’와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어리석음’ 등의 표현을 문제로 철거를 요구받은 바 있다.

그는 “(전시 중단으로) 협박이나 폭력을 긍정하는 일이 돼 버렸다. 소란을 피우면 전시회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선 “순수예술은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를 생각하는 전시회에 출품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작품을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평가하고 반박하게 하는 것이 좋다”며 “(일본에서) 그런 자유가 없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라는 이유로 전시 중단을 요구한 것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반하는 것”이라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보조금 지급 문제를 거론하면서 전시 중단을 압박한 것은 “허용할 수 없는 발언으로 문화의 독립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신문노련과 민방노조 등으로 구성된 ‘일본매스컴 문화정보노조회의’도 “행정이 뜻에 맞지 않는 표현을 배제하면 사실상의 ‘검열’에 해당해 사회로부터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잃어버린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에선 “민주주의사회를 좀먹는 비열한 테러 예고와 협박을 비난하지 않는 정치가의 자세도 문제”라면서 “다양한 표현과 의견에 관용적인 사회를 되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아이치 트리엔날레 측은 테러·협박전화 쇄도로 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지난 4일 나고야시 아이치문화예술센터 8층에 자리한 ‘표현의 부자유·그후’ 전시장 입구에 가설 벽을 세워 관람객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에 전시장 인근 공원에선 일본 시민 200여명이 집회를 열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며 전시 재개를 강력히 요구했다.

스가 관방장관은 5일 브리핑에서 자신의 발언이 소녀상 전시 중단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다. 나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것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향후 처리에 대해선 문화청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에 적절히 대응한다는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김진곤 대변인은 이날 “소녀상 전시 중단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문화예술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돼야 하며, 조속히 정상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선 “한·일관계가 어려운 상황일수록 양국 간 문화·체육 분야 교류는 더욱 소중하며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선 정치색 등을 이유로 작품의 철거나 변경이 잇따르고 있다. ‘표현의 부자유전·그후’ 실행위원회에 따르면 이번에 참가한 작가 16팀 중 2000년 이후 적어도 13팀이 어떤 형태로든 규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오키나와 미군 문제를 다룬 오카모토 미쓰히로(岡本光博)의 ‘낙미(落美)의 우려 있음’은 2017년 오키나와에서 열린 미술 행사에서 공개됐지만, “지역진흥에 맞지 않다”는 주민 비판을 이유로 공개가 일시 중지됐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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