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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접근하면 사격"에도 영공 침범, 러 군용기 앞에 기관포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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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했던 23일 오전 중ㆍ러 동해 상공 도발

남북서 각각 접근해 연합 편대로도 움직여

중앙일보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에서 두농위(杜农一) 주한 중국 대사관 무관(왼쪽)이 초치된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니콜라이 마르첸코 주한 러시아 대사관 무관(오른쪽)이 합참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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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동해 상공에선 한국과 중국ㆍ러시아·일본의 군용기 수십 여대가 뒤엉켰다. 중ㆍ러의 전략폭격기가 동해 상공으로 날아 들어오면서다. 공군의 KF-16 전투기 1대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의 A-50 공중조기경보통제기 1대의 전방에 기관포 경고사격을 하면서 긴장감은 최고로 치솟았다.

시작은 이날 오전 6시 44분쯤이었다. 중국의 H-6 전략폭격기 2대가 이어도 북서쪽에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안으로 무단 진입했다. KADIZ는 영공은 아니지만, 이곳에 진입하기 전에 한국에 알리는 게 관례다. 그러나 중국의 사전 통보는 없었다. 중국 전략폭격기 편대는 KADIZ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을 넘나들면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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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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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33분쯤 동해 북방한계선(NLL) 너머 북쪽까지 진출한 중국 편대는 러시아의 전략폭격기인 Tu-95 2대를 만났다. 러시아 전략폭격기 편대는 막판에 지그재그 항로를 그렸다. 중국과 약속한 시각에 합류 지점에 도착하려고 속도를 늦추려는 움직임으로 관측됐다.

이후 중ㆍ러의 연합 전략폭격기 편대는 대형을 이뤘다. 러시아 편대가 앞쪽에서 비행하면 3.7~5.6㎞ 뒤에 중국 편대가 따라가는 방식으로 KADIZ를 무단진입했다. 군 관계자는 “중ㆍ러가 함께 KADIZ를 무단진입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중ㆍ러 연합 편대는 9시 4분쯤 울릉도 남쪽에서 KADIZ를 이탈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후 중국 편대는 자국으로 돌아갔고, 러시아 편대는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KADIZ를 다시 무단진입했다.

이날 한국 공군의 F-15K와 KF-16 전투기 총 18대가 긴급 발진했다. 당시 일본 항공자위대에서도 비슷한 숫자의 F-15J와 F-2 전투기가 날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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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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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별도로 러시아의 A-50 공중조기경보통제기 1대는 오전 9시 1분쯤 KADIZ로 불쑥 들어온 뒤 9시 9분쯤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중앙방공통제소(MCRC)는 공용 주파수로 A-50에 대해 “접근하지 마라, 접근하면 경고사격하겠다”고 방송했지만, A-50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절차에 따라 아군 KF-16이 플레어(적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뿌리는 섬광탄)를 10여 발 발사한 뒤 기관포 80여 발을 쐈다. 합참 관계자는 “영공을 침범한 외국 군용기에 대한 첫 경고사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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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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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0은 3분간 독도 영공에서 머물다 9시 12분쯤 남쪽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기수를 되돌려 9시 33분쯤 두 번째로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KF-16은 다시 플레어 10여 발과 기관포 280여 발로 경고 사격했다. A-50 전방을 향해서다. 9시 37분쯤 독도 영공에서 벗어난 A-50은 9시 56분쯤 KADIZ를 나와 러시아로 향했다. A-50의 영공 침범은 모두 2회 7분이었다.

합참 관계자는 “영공을 침범한 A-50이 비무장이었고, 고도와 속도가 일정해 경고 사격 조치만 취했다”며 “적대 행위가 확인될 경우에만 격추 사격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날 러시아와 중국의 '합동 도발'은 양국이 동해에서 우리 영공과 KADIZ를 무시한 연합 훈련의 양상이었다.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중ㆍ러 양국의 전략폭격기가 미리 설정한 한국이나 일본의 목표물을 공동으로 핵공격하는 절차를 연습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중ㆍ러 연합 편대가 KADIZ를 제멋대로 비행할 무렵 중국의 전투함 2척이 이어도 남쪽과 포항 동쪽에서 각각 항해 중이었다. 중ㆍ러의 연합 훈련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목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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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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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은 중앙방송통제소(MCRC)와 중국 북부전구 방공센터를 연결하는 핫라인으로 여러 차례 KADIZ에서 나가라고 중국 측에 요구했다. 처음에는 “범위 초과(자신들 권한 밖)라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답변하던 중국은 나중엔 “국제법적으로 정상적으로 비행하고 있는 군용기”라고 둘러댔다.

김태호 한림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동해를 벗어나 태평양에 진출하려는 중ㆍ러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져 사전에 치밀하게 연합 훈련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중ㆍ러가 훈련을 핑계로 이런 식으로 도발하는 사례가 잦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영공과 KADIZ=영공(領空)은 국제법상 개별 국가의 영토와 영해의 상공으로 구성되는 국가의 주권이 적용되는 공간이다. 반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 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은 국제법상 주권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영공 외곽의 일정 지역 상공에 설정하는 임의의 공간이다. 따라서 KADIZ에 마음대로 들어오면 '무단진입'이지만, 영공에 들어오면 이를 넘어선 침범 행위이자 주권 침해다. 일반적으로 영공 침범 시에는 경고 방송→진로 차단→플레어 발사→경고사격의 단계를 거쳐 강제착륙을 시키거나 응하지 않을 경우 격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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