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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여행+] 영국인의, 영국 왕실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 곳, 레이크 디스트릭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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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영국의 자연을 보고 싶다면 컴브리아주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가야 한다. 영국왕실이 사랑한 천혜의 자연이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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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왕족을 마주쳐도 놀라지 마세요."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만난 공원 관리인이 강력한 악센트로 인사말을 건넸다. 영국 최대 규모 국립공원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일명 영국 왕실의 휴가지로 불린다. 최근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가 한 매체와 인터뷰하며 영국 왕실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가 레이크 디스트릭트라고 말하면서 다시금 화제가 됐다.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힐링 여행지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1년 방문객이 1600만명에 달한다. 1951년에 '스노도니아' '다트무어' 등과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201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됐다. 맨체스터에서 북쪽으로 약 130㎞ 떨어진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면적은 약 2300㎢.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크고 작은 호수 400여 개가 땅과 하늘의 경계를 허물고, 800m 이상 고봉들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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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가장 큰 이유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들었다. 특히 18세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중심으로 창작활동을 한 것에 주목했다. 가장 대표적 인물이 '영국의 국민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1770~1850)와 '피터 래빗의 어머니' 비어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1866~1943)다. 그림·시·만화 등을 통해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알게 된 영국 사람들은 예술작품에 묘사된 아름다운 풍광을 직접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무차별적 도시화를 겪은 영국 국민은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보존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고, 이러한 움직임은 국립공원 제도와 내셔널 트러스트 제도가 만들어지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관광객은 주로 남쪽 윈더미어와 동북쪽 울즈워터에 몰린다. 윈더미어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최대 호수이고 울즈워터가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호수를 감상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유람선을 타는 것. 울즈워터에서는 1889년부터 지금까지 운행하고 있는 '레이븐호'를 타고 호수를 구경했다. 1935년 스팀엔진에서 모터로 바꾼 레이븐호는 크리스마스 당일과 이브만 빼고 1년 내내 운항한다. 윈더미어에서는 스팀보트를 탔다. 석탄을 연료로 움직이는 스팀보트는 유람선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다. 10명 내외 배를 타고 선장에게 설명을 듣고 직접 키를 잡아보는 독특한 경험도 했다. 클래식한 기적소리까지 완벽했다.

국립공원 곳곳에 펼쳐진 트레일의 총길이는 1800마일(2896㎞)에 달한다. 맛보기로 울즈워터 호수 북쪽에서부터 데일메인 맨션까지 이어지는 5㎞ 트레일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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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데일메인 맨션으로 가는 길.


트레일은 영국 전원의 전형을 담고 있었다. 양을 먹이는 목초지, 보리가 자라는 들판이 겹겹으로 이어졌고, 작은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 뒤로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대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데일메인 맨션은 14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1679년부터 하셀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 옛날 가구와 손으로 직접 그린 벽지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맨션은 흡사 박물관 같다.

하셀 가족은 지금도 이 건물에 살면서 몇몇 방을 전시관으로 꾸며 외부인에게 공개한다.

성주(城主)와 함께하는 로더캐슬 투어는 타국에서 온 이방인은 물론 영국관광청 직원까지 흥분시켰다. 7대 론즈데일 백작의 차남 짐 로더는 1935년 이후 폐허로 변해버린 로더캐슬을 재건한 주인공이다. 짐 로더와 함께 성을 둘러본 다음 정원 투어에 나섰다. 수령 300년이 훌쩍 넘는 전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서쪽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서머하우스로 갔다. 이곳은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이 방문했고,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는 두 번이나 들러 차를 마셨던 곳이다. 27파운드를 내면 가든 입장료가 포함된 애프터눈티 세트를 맛볼 수 있다. 백작의 성에서 맛보는 영국 정통 애프터눈티라니. 돈이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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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더캐슬은 론즈데일 백작 소유의 성으로 현재 복원 중이다.


영국의 국민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의 아름다움을 찬미했고, 죽어서도 이 땅에 묻혔다. 영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시 한 구절쯤은 외운다. 레이크 디스트릭트 곳곳엔 그가 두 발로 여행한 길과 그의 흔적을 담은 건물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커크머스 워즈워스 하우스와 그래스미어의 도브 코티지 그리고 라이덜 마운트다. 커크머스 워즈워스 하우스는 1770년 워즈워스가 탄생한 곳이고, 도브 코티지는 1799년부터 1808년까지, 라이덜 마운트는 1813년부터 생을 마감한 1850년까지 살던 곳이다.

라이덜 마운트에서는 워즈워스의 6대손 크리스토퍼와 만났다. 런던에 거주 중인 그는 1년 중 6~7번 라이덜 마운트를 방문한다. 1968년 크리스토퍼의 할머니가 이 집을 샀고 1970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워즈워스 후손은 이 집을 박물관을 겸해 운영하면서 특별한 가족 행사에 이용한다. 라이덜 마운트의 백미는 가든. 워즈워스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정원을 그의 6대손과 함께 거닐었다. 크리스토퍼는 멀리서 온 방문자에게 워즈워스의 시 3편을 낭독해줬다. 크리스토퍼가 마지막 시를 읊고 책을 덮는 순간, 시간의 축이 훅하고 당겨져 200년 전과 현재가 만났다. 자식들과 함께 자신이 직접 가꾼 정원을 산책하는 워즈워스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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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 디스트릭트를 거닐면서 선한 일의 카르마를 생각했다. 좋은 건 또 다른 좋은 것을 끌어당긴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아름다운 풍경이 윌리엄 워즈워스를 있게 했고, 그가 그 아름다움을 글로 풀어냄으로써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가치가 더 널리 퍼지게 됐다. 워즈워스를 위시한 수많은 예술가들의 찬미가 이어지면서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시발점이 됐고, 영국에 국립공원 제도가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끼쳤다. 어쩌면 이 일련의 과정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방법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여행 정보 = 올해는 영국 국립공원 설립 70주년을 맞는 해다. 첫 국립공원은 1951년에 지정됐지만, 국립공원의 시작은 관련 법이 제정된 1949년을 기준으로 한다. 설립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신규 프로그램이 개설됐다. 로더캐슬 성주와 함께하는 가이드 투어, 공원 관리자와 보트 체험, 워즈워스의 흔적을 따라가는 걷기 체험 등 다양하다. 자세한 정보는 영국관광청 홈페이지 또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컴브리아(영국) = 홍지연 여행+ 기자]

※취재지원 = 영국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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