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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TF인터뷰] 최성룡 납북피해가족 대표 "北에 납북자 문제 왜 말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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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가> 최성룡 납북피해가족협회 초기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이사장)와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오금로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납북민 인권에 대해 이번 정부에 대해 비판하면서 "노무현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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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납북민 구출… "정치인들 사실상 직무유기 한 것"

[더팩트ㅣ송파구=박재우 기자] "남북대화에서 우리 납북자 얘기는 안 하면서 일본 납북자는 왜 얘기하느냐."

그의 목소리는 섭섭함과 간절한 부탁처럼 들렸다. 20년간 납북자 구출을 위해 바친 최성룡 납북피해가족협회 초기 납북자가족모임 대표(66)다. 최 대표는 한반도 평화를 누구보다 지지하지만,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문재인 정부의 대처에 많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재까지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후 납북자 수는 516명에 달한다. 이들은 1955년부터 2000년까지 광범위한 시기에 북한에 납북됐다. 이 중에는 KAL기 납북자(1969년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승객기가 승객을 가장한 고정간첩에 의해 납북된 사건),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 유학생, 교수, 목사, 어민, 서독광부, 군인·경찰 등으로 다양하다.

납북자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북한은 "납북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더팩트>가 최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29일 납북자들의 생사 확인 요구를 위한 청와대 앞 기자회견장에서였다. 이후 취재진은 지난 20일 송파구 잠실에 있는 최 대표의 사무실을 찾았다. 20년간 납북자 귀환 활동을 이어온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납북자 구출과 정부에 바라는 점 등을 들어보았다.

최 대표를 처음 만났던 청와대 앞 기자회견 당시가 떠올랐다. 당시 납북민 이민교 씨의 어머니 김태옥(87) 씨는 자필 편지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최 대표는 "이 씨를 데려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학생 어머니와 학생이 살아생전 얼굴이라도 한번 보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이처럼 KAL기 납북자들이나 이산가족들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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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오금로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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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사는 30대 기자에게 북한의 한국민 납치는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특히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관한 인식도 예전 같지 않았던 터라 더욱더 '납북'이라는 단어는 생경했다.

최 대표에 따르면 북한은 납북을 먼저 진행한 뒤에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시 다 돌려보냈다. KAL기에서 조종사들과 승무원을, 어민 중에서는 은행 업무 경험이 있던 사람을 데려갔다고 했다.

그가 납북피해자 가족을 돕기 시작한 건 한국 정부가 북한 국민을 자국으로 보내주는 것과 달리 우리 국민을 돌려보내지 않고 있는 상황의 안타까움 등이 작용했다. 개인사도 상당히 작용했다. 최 대표의 아버지 역시 납북돼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납북자 가족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남한에 있던 비전향장기수 리인모(전 조선인민군 종군기자)를 북한에 돌려보냈다. 김일성의 요구에 인도적 차원에서 판문점을 통해 북쪽으로 보냈다"라며 "리인모는 최장기 장기수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사람인데, 그 소식을 듣고 우리 어머니께서 '저런 사람도 돌아가는데, 납북된 우리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아와라'고 했다. 그때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최 대표는 이후 1993년 4월 5일 리인모 북송 항의 플래카드를 처음으로 임진각에 걸면서 본격적으로 납북자 및 납북피해자 돕기를 시작했다. 2000년에 납북피해자가족연합회를 만들고 중국으로 가 '이재근 귀환자(1970년 납북~2000년 귀환)'를 처음으로 구해왔다.

그는 "이재근 씨의 귀환이 언론에 많이 나오면서 납북자 구출에 더욱더 매진했다. 국가정보원에서는 말렸지만, 계속해서 진행했고 결국, 총 9명의 납북민을 구해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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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요코다 메구미의 딸 김은경의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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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구출을 위한 일을 하는 그에게 아버지의 납북 경위와 이후 어떻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정부 발표로 알게 됐다. 아버지는 제가 15살(1967년)이던 해 서해 바닷가에서 북한에 납치됐다"면서 "당시 아버지는 3척의 배를 소유하고 있는 선주였는데, 그날 하필 선원 한명이 부득이한 이유로 배를 타지 못하는 바람에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셨다"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아버지와 관련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납북 후 3개월을 기다렸다. 아버지가 인천항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8명의 납북자 중 6명이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없었다. 어머니는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켈로부대(6.25 당시 미국 극동군 사령부가 북한 지역 출신으로 조직한 북파 공작 첩보부대) 출신인 아버지가 못 올 걸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인민재판'에 회부됐다는 등 이런 식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조금 세월이 지나서야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족사로 최 대표는 납북자 구출에 더 열을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과도 상당했다. 20년간 납북자 구출을 위해 활동했던 그에게 잊히지 않았던 순간은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 '김영남'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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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고 있는 모습./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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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2004년에 일본 기자들과 중국 국경 현장을 많이 갔다. 한 일본 기자와 비밀리에 중국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만난 북한 정보통으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면서 "북한 정부가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1977년 13살 당시 니가타 현의 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다 납북)의 남편 김철준이 사실은 한국인 김영남(1978년 납북)이라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추가 취재를 위해 일본 기자와 논의하려 했지만, 일본 기자가 귀국 직후 위암으로 사망했다. 최 대표는 결국, 이 사건을 국내 언론에 알렸고, 일본 정부가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고 한다.

최 대표는 "일본 정부 관계자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평양에서 김은경(메구미의 딸)을 만났다. 당시 악수를 하며 DNA를 훑어왔고, 이후 김영남의 어머니 최계월 씨의 DNA와 비교해보니 일치했다. 그 당시 많은 사람이 제게 '헛소리다', '틀린 소리다' 비판했다. 하지만 결국 제 주장이 맞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메구미 사건 이야기를 이어갔다. "2006년 4월, 우리는 김영남의 어머니, 누이와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날 오전 8시, 평양에서 방송을 통해 그동안 주장했던 내용을 뒤집는 내용을 보도했다. 북한은 김철준이 김영남이고 '김은경'은 그의 딸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그해 6월 최계월(어머니) 씨와 김영남(아들)이 금강산에서 눈물의 상봉을 했다"고 회상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의 상징인 '메구미 사건'의 중요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최 대표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일본은 여전히 북한을 향해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태도를 지켜보는 최 대표로서는 문재인 정부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납북자 문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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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납북자 가족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은 당시 아베 총리, 트럼프 대통령 내외와 요코다 메구미 어머니의 모습.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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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납북자 이슈를 다루는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의 태도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라면서 "전 당시 메구미의 딸 김은경의 DNA를 요구했는데, 우리 정부는 관망했다. 정부는 조용히 있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일본 정부가 저와 협상했다. 일본 관계자들과 기자들은 제 사무실 근처 호텔에 진을 치며 찾아왔다. 그래서 DNA가 나오면 결국 공동발표하기로 했다. 일본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구미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납북 문제라고 하면 '메구미' 사건을 떠올릴 만큼 일본 정부에서 굉장히 신성화시켰다. 일본은 2000년도 이전까지만 해도 납북자 문제를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메구미' 얘기를 시작하면서 2002년도에 김정일-고이즈미 납북자 관련 합의까지 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일본의 태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남북대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이 꺼리는 인권 문제와 관련해 언급하는 것을 자제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당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아베 총리의 요청이었다고 했다.

최 대표는 "남북대화에서 우리 납북자 얘기는 안 하면서 일본 납북자는 왜 얘기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깔아뭉개는 것 같다. 자국민 보호 정신이 결여돼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면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했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다녀와서 김정일이 우리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한, 노 대통령은 납북자 가족들을 위해서 법을 통과시켜주기도 했다. 그가 처음 노 대통령을 만난 건 해양수산부 장관 재직 당시였다. 이후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최 대표는 납북민 가족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6일을 단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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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가 인터뷰 도중 사진을 가르키며 설명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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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할머니들과 단식을 했는데 노 대통령이 그 기사를 보고 비서관들을 보내 우리를 찾아왔다. 할머니들 위험하니 국회와 협조를 해서 법을 만들어 내겠다고 답변을 받았다"면서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그렇게 만들어졌다"라고 과정을 설명하며 문재인 정부를 지적했다.

최 대표는 현 정부가 납북자 문제와 북한 인권과 관련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작전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오히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일본의 경우처럼 납북자 문제에 대해 자주 언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납북자 문제가 언론을 통해 계속 언급되는 것과 관련해서 북한에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북측에 납북자 송환을 요구해야 한다"면서 "김일성·김정은은 납북자·국군 포로를 볼모로 장사를 한다. 이 상황에서 피해자를 데리고 올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은 사실상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에서 우리 국민의 납북자 얘기는 안 하면서, 일본 납북자 얘기는 왜 하느냐. 북한 쪽은 북한 여종업원(자발적으로 탈북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탈북민)들을 보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막상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지 않느냐"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북한을) 설득할 생각하지 말고, 납북자 문제는 천륜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해 요구하고 조건을 붙여 데려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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