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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北 "북·미관계, 南 참견 마라"며 文정부 비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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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외무성 국장, 文 대통령 세계 통신사 인터뷰 다음날 "조·미 대화, 南 통할 일 없다"
北 매체, 文 대통령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며 "여론 호도한다" 비난하기도
文 대통령 대북 강경 발언에 대한 반발인 듯
전문가 "협상 교착 국면 책임 한국 정부에 돌리려 해" "北 편들지 않는 南에 대한 불만 토로"
"남북관계, 잘못 가고 있어" "북한만 바라보다 외교 입지 좁아졌다" 지적도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환영 인사를 나온 평양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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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7일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 중재자·촉진자를 자임해온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다"고 비난하고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비난한 데 이어 이번엔 격이 한참 낮은 외무성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이 담화를 통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권정근은 '남북 사이에 진행되는 대화는 하나도 없다'면서 문 대통령이 전날 연합뉴스 등 세계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간에 다양한 경로로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 발언을 전면 부정했다.

권정근의 이번 담화로 국제사회의 불신 속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다"고 거듭 밝혀온 문 대통령 입장이 난처해졌다. 더구나 현 정부가 국내의 일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쌀 지원에 나서고 추가 지원 의사까지 밝힌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야당의 공세에 직면할 수 있다. 더구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으로 출국하는 날에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갖고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김정은의 최근 의중을 들을 계획이다. 시 주석은 지난 20~21일 방북해 김정은을 만났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문 대통령에게 비핵화 문제에서 손을 떼라는 메시지를 낸 것은 가볍게 보아 넘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권은 이날 담화에서 "조·미(북·미) 관계를 '중재'하는 듯이 여론화하면서 몸값을 올려보려 하는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며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 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조·미 사이에 이미 전부터 가동되고 있는 연락 통로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라며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앉아 하게 되는 것만큼 남조선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권은 또 "남조선 당국자들이 지금 북남 사이에도 그 무슨 다양한 교류와 물밑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남조선 당국은 제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권정근의 이날 담화는 과거 북한이 고수해온 '미국과 직접 소통하고, 남측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연상케한다. 실제 권의 담화 요지는 한국 정부를 비핵화 대화 당사자나 관여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이처럼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일차적으로 최근 문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완전한 핵 폐기를 위한 북한의 실질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등 강경 메시지를 낸 데 대한 반발로 보인다. 북한은 이날 오전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서는 "얼마 전 남조선 당국자가 북유럽을 행각하는 과정에서 북남관계, 조·미 관계가 교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치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고 비난했다. 여기서 '남조선 당국자'는 문 대통령을 말한다. 북한 매체가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조·미 수뇌'라고 부르는 것과 대비된다.

이에 대해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의 외교 결례'라고 지적하면서,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의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리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 외무성 국장의 담화는 문재인정부가 그동안 강조해온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완전히 깎아내리는 발언"이라면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이후 협상 교착 국면의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국내 정치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김정은의 서울 답방에 목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 한국 정부에 차가운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들의 몸값을 올리겠다는 저의(底意)도 깔려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에 북한 외교에만 집중하다 한국의 외교 입지만 좁아졌다"고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문 대통령이 세계 통신사들과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힌 바로 다음날 북한 실무 담당자가 대통령의 제안을 일거에 묵살한 것"이라고 했다. 신 센터장은 "문 대통령은 전날 인터뷰에서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단계로 평가하는 등 북한 편을 드는 듯한 발언을 했다"면서 "그럼에도 북한이 문 대통령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한국 정부가 미·북 관계에서 뭔가를 알고, 또 주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남북관계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미·북 사이에서 북한에 유리한 역할을 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는 효용 가치가 크지 않다고 보고, 대남 압박 메시지를 낸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표방하면서도 최근 들어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들지 않는 듯한 일련의 메시지를 내자 서운함과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차관은 "그와 동시에 미국과의 소통 과정에서 제3국의 개입을 막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엿보인다"면서 "한국 정부를 향해선 '이제 미국과 직접 협상할테니 너희는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고, 미국을 향해서도 '우리와 직접 소통하면 되지, 제3국과 이야기할 필요가 있느냐'고 우회적으로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윤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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