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8 (토)

김상조 26분간 "경제학자" 13번…"공정경제가 맨앞은 아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정책은 '실기(失機)'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21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발탁된 김상조 실장(사진)이 취임 직후 정책실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김 실장은 전임자인 김수현 전 정책실장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회의 등 운영 측면에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다만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김 신임 실장은 정책의 완결성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적기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더욱 이런 민첩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김 실장은 정책 고객, 이해관계자와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했다. 언론, 국회, 재계, 노동시민사회와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도 했다.

이런 김 실장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으로 기자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김 실장은 26분간 진행된 간담회 도중 '경제학자'라는 말을 13번이나 언급했다. 2분에 한 번꼴이다. 경영학자인 장하성 전전임 실장(현 주중 한국대사)과 도시공학 전공인 김수현 전임 실장과 달리 경제를 잘 안다는 점을 강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 실장은 "저는 경제학자"라며 "모든 일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걸 비교형량하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게 경제학자"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소명과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경제학자에서 정책 사령탑에 오른 자신의 길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 실장은 "경제정책은 시장의 경제주체들에게 얼마나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좌우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 집행에 있어서 유연성은 발휘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선험적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건 경제학자 태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경제학 거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에 빗대 본인의 역할을 설명했다. 그는 "20세기 경제학자 케인스를 경제학자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경제학자라기보다 처칠 시대에 재무장관, 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관료였다"고 소개했다. 이어 "케인스는 야당 의원이 왜 말을 바꾸냐는 질문에 '사실이 바뀌면 내 마음도 바뀐다'고 했다"며 "환경이 바뀌면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 저격수'라는 이미지를 지우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로 직전 공정거래위원장을 역임했던 경력 때문에 문재인정부 경제정책 3대 축(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에서 공정경제에 무게가 쏠리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해명했다. "혁신성장이 뒤로 밀리고, 공정경제가 너무 거칠게 나가는 것 아니냐는 일부 우려는 제가 지난 2년간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왔는가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면 풀릴 오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공정경제 정책만으로 한국 경제가 필요로 하는 성과를 다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공정경제를 먼저 한 뒤 혁신성장을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공정경제를 맡았지만 혁신성장이 동시에 중요해 같이 가야하며, 소득주도성장도 마찬가지"라며 "현 정부 경제정책 기본 축인 이 세 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선순환하는 방향으로 갈 때 성과가 나온다는 게 제 확신"이라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공정경제만을 생각하지 않고 공정경제가 혁신성장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성과에 대해 "공정위 정책이나 다른 부처와 협업할 때도 공정경제와 혁신성장이 상호 연결돼 선순환 효과를 내도록 지난 2년간 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간담회 내내 자신이 변신을 시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 실장은 '케인스주의자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저를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케인스나 맬서스와 같은 흐름의 경제학자들이 (나에게) 미친 영향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애덤 스미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책도 제 생각을 형성하는 데 똑같은 비중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하이에크 책으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남은 상견례라며 민감한 현안에 대한 언급은 자제했다.

[박용범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