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홍콩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에 감염된 돼지가 확인돼 당국이 살처분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214] 지난해 중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북한에도 퍼졌다. 한반도에 ASF가 상륙한 것이다. 한국 정부도 ASF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돼지가 ASF에 전염될 경우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탓에 돼지 농가들과 돈육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감염된 돼지 분비물(눈물·침·분변 등)에 의해 전파되는 ASF의 잠복 기간은 약 4∼19일이다. 이 병에 걸린 돼지는 고열과 식욕부진, 기립불능, 구토, 피부 출혈 증상을 보이다가 보통 10일 이내에 폐사한다. 이 질병이 발생하면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발생 사실을 즉시 보고해야 하며, 돼지와 관련된 국제교역도 즉시 중단된다. 한국은 ASF를 가축전염병예방법상 제1종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ASF는 사람이나 다른 동물은 감염되지 않고 돼지과(Suidae)에 속하는 동물에만 감염된다. 자연숙주는 사육돼지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야생멧돼지로 알려져 있다. ASF는 1920년대부터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왔으며 대부분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 풍토병으로 존재하고 있다. 유럽은 1960년대에 처음 발생했다가 포르투갈은 1993년, 스페인은 1995년에 박멸되는 등 이 질병을 근절하는 데 30년 이상이 소요됐다. 이후 유럽에는 없어졌다가 2007년에 조지아에서 다시 발병하면서 현재 동유럽과 러시아 등지에 풍토병으로 남아 있다. ASF에 전염된 돼지는 목이나 복부 등 피부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고, 코나 귀, 다리에 출혈이 생기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모든 연령의 돼지가 감염될 수 있고 감염된 돼지가 빠르면 며칠 내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
지난해 8월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아시아 최초로 ASF가 발생했고, 이후 중국 전 지역으로 확대됐다. 그러다 중국 이웃 국가인 몽골과 베트남, 캄보디아에 이어 북한에까지 퍼지면서 동아시아 전역이 발칵 뒤집여졌다. 중국은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 중 하나다. 그래서 중국의 돼지열병 발생은 중국 국내의 축산업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돼지고기 가격과 육류산업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국 당국은 "돼지질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지만, 중국의 주장과는 다르게 불법 축산물을 반입하려던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잇달아 적발되고 있다.
ASF가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확산되면서 이웃한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도 신경이 곤두섰다. 베트남 현지 언론인 베트남뉴스에 따르면 지난 2월 북부 흥옌성에서 ASF가 처음 발병한 베트남은 58개 성과 5개 직할시 중 42곳으로 퍼지면서 전체 돼지 사육두수의 5%에 해당하는 170만마리를 살처분했다. 베트남과 접한 캄보디아 라따나끼리주의 경우 이미 지난 3월 ASF 발병이 확인됐다.
인접한 태국의 농업부는 자국 내 돼지 50%가 ASF에 감염될 경우 10억달러, 80%가 감염될 경우 피해액이 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4월 ASF 차단을 위해 470만달러의 예산을 승인한 태국 정부는 1차 관문인 공항과 국경검문소에서의 검역을 강화하고 돼지 폐사 보고 기준도 강화했다. 미얀마도 지난해 말부터 중국산 돼지고기 및 관련 제품 수입을 잠정 중단했다.
무엇보다 돼지 수백만 마리가 도살되면서 돼지고기 가격 폭등이 우려된다. AFP에 따르면 중국에서 살아 있는 돼지 가격은 전년 대비 40%가량 올랐고, 유럽과 캐나다, 브라질로부터의 돼지고기 수입도 증가하고 있다. 중국 내 돼지고기 생산량도 약 30%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AFP통신은 "아시아 지역 일부 소비자들은 이미 전보다 비싼 값을 주고 돼지고기를 사기 시작했다"며 "미국에서도 '크리스마스 햄'을 사는 12월 말이면 가격 인상을 체감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전 세계 돼지의 약 50%를 사육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ASF 유입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5일 ASF 방역 강화 방안과 관련해 "접경지역을 비롯한 전국의 멧돼지 개체 수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북한의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멧돼지를 통해 우리에게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 멧돼지는 육지와 강, 바다를 오가며 하루 최대 15㎞를 이동한다고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북한에서 ASF 확산 방지에 대한 노력이 부족한 상태다. 북한 국영 목장들이 ASF에 걸린 돼지들을 소시지 공장에 헐값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최근 북한 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가 사실일 경우 ASF 확산이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평안남도 소식통은 RFA에 "평성시장과 순천시장에서 판매되는 돼지고기 햄과 소시지의 낱개 가격이 개당 6000원에서 4000원 이하로 폭락했다"며 "국영 목장들이 전염병에 감염된 돼지들을 소시지를 생산하는 외화벌이 회사들에 싸게 넘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덕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