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와 행정부는 이처럼 북핵 외교가 실패할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을 금지한 법안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비핵화 협상이 파탄 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발효된 국방수권법이 2만2000명 이하로 못 줄이게 한 것보다 6500명 늘려 현 주한미군 규모에서 아예 한 명도 줄일 수 없도록 했다. 한반도 전술핵의 대안으로 해상 순항미사일을 거론한 것도 마찬가지다. 전술핵 배치는 어렵지만 비핵화 협상 파국 이후 북한의 핵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확장 억지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런 미국의 동향은 2·28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의 향배를 매우 어둡게 보고 있음을 방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북한의 협상 복귀를 재촉하지만 북한은 잇단 도발로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북한은 최근 미국의 선박 압수 조치에 반발하며 우리 정부는 물론 민간단체와의 접촉마저 끊고 사실상 자폐(自閉) 상태에 들어갔다. 이러니 미국으로선 북핵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의 실패 이후를 대비하며 군사적 대응 태세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 카드까지 꺼내 들며 북한의 협상 복귀에만 매달리고 있다. 어떻게든 대화 국면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런 한편으로 파국에 대비한 안보 태세는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북한의 잇단 도발은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둔 가공할 미사일로 무장했음을 확인시켜 줬지만 우리 정부나 군은 그런 위협에 맞설 대비전력을 마련하기는커녕 도발의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한 분위기다. 진정 외교가 힘을 발휘하려면 그 바탕엔 강한 군사력이 있어야 한다. 힘없는 외교는 굴신(屈身)의 다른 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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