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강천석 칼럼] 文대통령은 空理空論 벗을 수 있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實事求是로 일본 문제 풀고 ‘동맹 지렛대’로 한·미 관계 다진 김대중

측근과 지지자 돌아서고 침 뱉어도 한·미 FTA 결단했던 노무현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고문


취임 3주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실적에 어떤 점수를 매기고 있을까. “경제·외교·국방, 사회 갈등 조정, 미래를 향한 재도약 의지 충전(充電) 등등의 분야에서 목표를 달성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모두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각오로 다가올 재난(災難)에 대비할 도리밖에 없다.

현 상황을 가장 안타까워할 사람은 김대중·노무현 두 전 대통령일 것이다. 두 대통령은 결정적 순간에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실사구시'란 객관적 사실을 통해 판단하고 해답을 얻으려는 자세다. '실사구시'의 정반대편에 '공리공론(空理空論)'이 있다. 현 정권 문제의 근원은 '공리공론'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0월 일본 방문을 앞두고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와 회견했다. 이 인터뷰 질문자로 일본 종합상사 한국 법인(法人) 대표로 있던 일본인이 나왔다. 전례(前例) 없는 일이었다. 형식 파괴는 또 있었다. 대통령은 통역에게 질문하는 '일본어'는 통역하지 말고, 본인의 '한국어' 답변만 일본어로 옮겨달라고 했다. 외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해 실업자 175만명이 거리를 헤맸다. 그 상황에서 대통령은 '형식'을 버리고 일본에 보낼 '메시지'를 택했다.

외환 위기 극복 전망을 묻는 말에 대한 대통령 답변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일본 언론 회견과 함께 외국 지도자 어록(語錄)으로 요즘도 거론된다. 덩은 '문화혁명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의 책임'을 묻는 말에 "그 재난은 정치 경험이 부족했던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했다.

"한국 국민은 건국 이래 네 가지 시련을 극복했다. 첫 번째, 1948년 공산당의 저항을 무릅쓰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두 번째, 6·25동란 때 공산주의를 격퇴하고 나라를 지켰다. 세 번째,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세계 11번째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마지막으로 작년 민주 선거로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시련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왔기에 이번 위기도 선진국 진입의 도약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정치적 반대 진영에 속한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과 6·25 극복 공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건설 공로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김영삼 대통령 책임 문제를 비켜 감으로써 김 대통령은 본인에 대한 일본 내 평가를 크게 끌어올렸다.

이렇게 겉문을 따고 들어간 대통령은 일본 국민 마음을 노크했다. 질문자는 '월드컵 개회식이 천황(天皇) 한국 방문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조심스레 타진했다. 그때도 '일황(日皇)'을 '일왕(日王)'으로 불렀다. 그러면서 그가 사는 곳은 천황이 산다는 뜻의 '황거(皇居)'라고 표현했다. 한국은 "'일왕'이 '황거'에서 퇴위(退位) 의식을 가졌다"는 비문법적(非文法的) 표현을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였다.

"우호국 국가원수가 왕래할 수 없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번 방일(訪日)로 장래 천황께서 방한할 때 한국 국민이 따듯하게 환영할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다." 이렇게 일본의 겉문과 안문이 동시에 열리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일본 내 친한(親韓) 분위기는 90%에 육박했고, 한국 TV 드라마가 일본 안방을 차지하고, 남이섬을 비롯한 드라마 촬영지는 일본 관광객으로 붐볐다. 이런 실용주의는 '해군만 국군의 정통(正統)이냐'는 논란을 낳거나 '친일(親日) 세력과 빨갱이'를 등장시킨 문 대통령 언설(言說)과 대비(對比)를 이룬다.

한국은 '동맹의 실용주의'로 주체사상이란 북한의 공리공론을 제압해왔다. '동맹의 원리'는 '지렛대 원리'와 같다. 작은 힘으로 무거운 무게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몰두하기 전 한·미 동맹의 지렛대가 튼튼한지 먼저 점검했다. 국제 관계에서 공리공론의 종착역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일본 방문 귀국길에 잠깐이라도 한국을 들러달라'고 구차스럽게 미국 대통령을 붙들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정권의 공리공론 대표 선수는 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사슴(鹿)을 보고 말(馬)'이라고 하지 않고선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후보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일자리 예산 54조원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문 대통령은 한때 자주(自主)에 홀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리공론을 벗고 한·미 FTA 체결을 결단한 후 겪었던 갈등과 고통을 곁에서 지켜봤다. 측근과 지지자들이 대통령 얼굴에 침을 뱉었다. 문 대통령은 ‘공리공론 열차’에서 ‘실사구시 열차’로 바꿔 탈 마지막 환승역(換乘驛)에 서 있다. 대통령은 고통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을까.

[강천석 논설고문]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