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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임경희의문화재풍경] 문화재·주민의 상생, 소규모발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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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九八十一, 八九七十二, 七九六十三.’ 무엇인지 아시겠는가. 초등학생 때 배워 누구나 아는 구구단이다. “구일은 구, 구이는 십팔, 구삼은 이십칠…”처럼 작은 숫자에서 큰 숫자로 이어지는 지금의 것과는 순서가 다르다.

세계일보

2011년 충남 부여군 쌍북리 328-2번지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의 여러 유물과 함께 목간(나무에 글자 등이 적혀 있는 것·사진) 한 점이 출토됐다. 눈으로만 봤을 때는 몇 글자만 보이지만, 적외선 촬영으로 103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숫자가 큰 9단부터 시작해 2단까지 적혀 있으며, 단과 단 사이에는 줄을 그어 구분하고 있다. 여러 기록을 통해 삼국시대에도 구구단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는데, 목간이 발견되면서 백제에서 구구단이 사용된 사실을 최초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 경북 경주시 탑동 6-1번지와 6번지에서는 4~6세기 신라 무덤 37기가 발굴됐다. 그중 왕릉급 무덤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금귀걸이 한 쌍이 출토돼 주목을 받았다. 백제 구구단 목간과 신라의 화려한 금귀걸이 한 쌍, 지역도 역사적 배경도 다른 두 유물의 공통점은 소규모발굴지원사업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현재는 발굴을 하지 않았지만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곳을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이라고 부른다. 이 지역에서는 건축 등이 제한을 받는다. 다만 소규모 개인 주택이나 농업 관련 시설 등은 미리 조사를 하면 건축을 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 한해서만 발굴비용을 개인 부담 없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 발굴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소규모 발굴조사 지원이라고 한다. 2010년 이 제도가 시작되면서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토지 소유주는 재산권 제약에 따른 부담을 일정 부분 덜게 됐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구구단 목간이나 금귀걸이와 같은 중요한 유물을 발굴할 수 있게 됐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규제가 불가피하긴 하지만 이로 인한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소규모 발굴조사 지원 같은 사회적 협의, 정책적 노력이 더 많아져야 한다.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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