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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삶의 창] 교실과 운동장 사이 / 김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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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몇해 전에 어느 고등학교에 일년 동안 출강한 적이 있다. 매주 갈 때마다 일찍 도착해 교정의 스탠드에서 도시락을 먹고 교실에 들어가곤 했는데, 운동장에서는 야구부 선수들이 연습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구경할 수 있었다. 신체의 한계선에서 커다란 함성으로 서로를 북돋우며 치밀하게 기량을 쌓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온 마음으로 팀워크를 만들어가는 젊은이들의 몸짓에서 호연지기가 느껴졌다.

그 친구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내 강의에 들어온다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종일 훈련만 한다. 반면에 그 운동장에는 일반 학우들이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교실에서 보내는 것이다. 그 칸막이를 낮출 수 없을까. 나는 수업에 몇몇 선수들을 초대하여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싶어서 교무 주임을 통해 야구단에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일반 학업과 완전히 격리된 채 운동부가 운영되는 상황에서 무리한 제안이었다.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은 계속 쟁점이 되어 왔다. 다행히 최근에는 일정한 수업 시수를 채우도록 독려하는 추세라고 한다. 사고력이 경기력에 직결되고, 운동을 그만둔 이후에 인생을 원만하게 꾸려가기 위해서 기본 학력이 필요함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입시 대비 위주로 빡빡하게 진행되는 교과 내용은 너무 버겁다. 선수들의 처지에 맞춰서 지적 역량을 향상시키는 학습 프로그램이 설계될 수는 없을까.

몇해 전에 미국의 어느 수학 교과서에 피겨 선수 김연아의 사진이 실린 적이 있다. 스케이터가 점프할 때 회전수에 따른 각도를 구하는 문제에서 이미지 자료로 활용된 것이다. 스포츠는 여러 학문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야구의 경우 투수의 자세, 볼의 움직임, 타자의 스윙, 수비수의 반응 등은 물리학의 원리로 설명된다. 또한 종목을 불문하고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이나 팀워크에 생리학과 심리학이 접목되며, 스포츠 마케팅은 경제학과 경영학의 연구 분야다. 이런 내용을 가공하여 교과를 구성한다면 즐거운 배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선수들이 자신의 체험을 언어로 담아낸다면 인문학 공부가 된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만화, 영화, 문학 작품 등이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빚어지는 이야기는 박진감이 넘친다. 그것을 말이나 글로 풀어내 국어 시간에 다른 학생들과 나눈다면 뿌듯한 교감이 이뤄질 것이다. 소통 능력은 선수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역량이고, 나중에 스포츠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은퇴 이후 새로운 삶에서도 절실하다.

운동선수들은 다른 학우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중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 반에 야구 선수와 축구 선수가 한 명씩 있었는데, 운동부라 해도 많은 수업에 참여했다. 자연스럽게 교우 관계가 맺어졌고 꽤 인기가 있었다. 우리에게 운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운동장에서 여러 기술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두 친구의 이름이 지금까지 또렷이 내 기억에 남아 있을 만큼 존재감이 확실했다. 그들은 프로 선수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급우들과 나눈 경험과 인연이 생애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교실과 운동장은 만나야 한다. 지난해 여름 인천의 어느 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갔을 때, 운동장에 잡초가 무성한 것을 보았다. 학생들이 교실에서만 지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폭염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흙을 밟지 않는다면 심신은 퇴화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은 지성과 야성을 함께 닦으면서 탁월함을 연마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학력(學力)은 몸의 단련과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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