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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녹색세상]핵폐기물 재검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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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3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칭)를 “우리 사회 각 부문을 대표하는 중립적 전문가 15인”으로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핵발전소 지역과 시민사회단체는 여기에 반대해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국민, 원전 지역 주민, 환경단체 등 핵심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따라 추진되는 재검토위원회에 그 이해관계자가 빠진 것이다. 이해당사자 포함을 강하게 요구했던 지역과 시민사회의 의견이 거부된 셈이다.

경향신문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하면 결국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격렬한 저항을 피할 수 없다. 안면도, 굴업도, 위도가 말해준다. 핵폐기물 논의를 제대로 하려면,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어도 이해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논의 결과가 자신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지역주민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지역주민이 배제된 채 구성하여 운영되는 위원회는 아무리 중립적이어도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중립적’이란 말 자체도 애매하고 공허하다. 에너지처럼 중차대한 문제에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이 중립적 인사라면, 그 중립이야말로 중대한 결격 사유가 아닌가. 중립적 전문가는 찾을 수도 없고, 찾아낸다고 해도 문제다.

재검토위원회 구성과 별개로 반드시 먼저 해결할 것이 있다. 관리정책을 논의하기 전에 고준위핵폐기물이란 것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한쪽에서는 1m 앞에 노출되면 누구나 1분도 안 걸려 사망하고, 10만년 이상 완벽한 격리 보관이 필요해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치명적 독성물질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이 위험이 과장되었다고 반박한다. 이런 상태로는 관리정책을 제대로 논의할 수 없다. 먼저 논란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전제조건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중립’을 내세워 침묵하면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다.

지난번 ‘재검토준비단’에 사용되었던 ‘고준위방폐물’이란 표현이 이번 ‘재검토위원회’에서는 ‘사용후핵연료’로 바뀌었다. 이유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관리할 대상의 위험성이 가려지고 한층 깔끔하고 얌전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나 세계에 아직 영구처분장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고준위핵폐기물의 성격은 분명해진다. 그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수혜자 부담 원칙을 적용한다면, 핵폐기물은 핵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대도시, 특히 수도권에 보관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비현실로 치부된다. 어느 누구도, 어떤 정부도 그 정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언젠가 핵폐기물 처리기술이 나올 것이라는 말은 미래를 담보로 내뱉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위험을 솔직하고 겸손하게 인정하면, 가능한 한 핵발전소 조기폐쇄로 핵폐기물 배출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다. 핵발전소와 고준위핵폐기물은 동전의 양면이다. 따로 떼어서 생각해선 안된다.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른 핵발전소는 폐쇄하는 것이 당연하다. 만에 하나, 임시저장소가 포화되기 전에 논의를 마치겠다는 의도가 있다면, 재검토위원회는 임시저장소를 확충해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하기 위한 요식 절차에 불과해진다. 탈핵 정부가 핵발전을 추진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영광 한빛1호기에서 제어봉 과다 인출로 인한 출력 급증 사고가 며칠 전 뒤늦게 알려졌다. 이번에는 운전자 실수와 규제기관의 대처 미숙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고 탈핵을 선언했으면, 정부는 이제라도 자기 소신에 좀 더 과감하고 충실하길, 아무리 급해도 핵발전소 수출 같은 자가당착의 행보는 그만두길 바란다. 좌고우면하는 사이 2년이 지났다. 시간이 별로 없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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