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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구해줘2’, 수몰예정지구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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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OCN 드라마 <구해줘2>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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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 수목드라마 <구해줘2>는 2017년 방영된 <구해줘>에 이어 사이비 집단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구해줘>가 구원파의 유병언, JMS의 정명석, 영생교의 조희성 등 사이비 종교의 대표적인 인물들에서 모티브를 따온 구원선의 백정기(조성하) 교주를 앞세워 사이비의 해악을 그렸다면, <구해줘2>는 논란의 이단 교주가 아니라 개신교 교회 장로 최경석(천호진)을 통해 사이비의 근본적인 의미를 묻는다는 데 차별점이 있다. 이 때문에 <구해줘2>는 개신교를 사이비 종교로 오인하게 한다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부터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 대상으로 공격당하기도 했다. 결과는 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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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2>는 이미 알려졌다시피 2013년에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본격 사회 고발극으로도 불린 <사이비>는 수몰예정지구 마을을 배경으로, 주민들의 보상금을 가로채려는 사기꾼 장로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술주정뱅이 가정폭력범의 대립을 통해 행복한 거짓과 불행한 진실 사이에서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다. 원작과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인공 설정에 있다. 원작의 김민철은 틈만 나면 아내와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적 가부장이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이가 구제불능의 가정폭력범이라는 설정은 선악의 이분법을 해체하며 <사이비>에 흥미로운 딜레마를 안겼다.

이와 달리 <구해줘2>의 김민철(엄태구)은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등장한다. 그는 10대 시절, 부친의 잔혹한 폭행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그를 죽이고 전과자가 된 전력이 있다. 그에게 죽임당한 부친이 바로 원작 <사이비>의 가장 김민철에 가깝다. 가정폭력범인 가부장이 사라진 드라마 세계에서는, 온화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가장한 최경석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최경석은 아버지가 없는 마을 주민 병률(성혁)에게 능력 있고 든든한 구원자로 접근해 월추리 마을에 입성할 계기를 만들고, 결국에는 마을 공동체의 실질적 가장 역할로 자리를 잡는다.

최경석의 진짜 정체가 여성들을 착취하는 유흥주점 아드망의 사장이자 조직폭력배라는 점에서 더 악랄한 가부장의 귀환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최경석의 본 모습을 알고 처단하고자 하는 김민철의 분노는 또 한번 부친 살해 충동의 성격을 띠게 된다. 말하자면 김민철이 최경석의 숨겨진 비리를 밝히고 진실을 규명해가는 과정은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가부장을 응징하는 과정과도 같다. 문제는 김민철 역시 폭군 아버지의 태도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이라는 점이다. 이는 그에 대한, 여동생 영선(이솜)의 강렬한 혐오를 통해 잘 드러난다.

영선은 어린 시절 부친과 오라비가 한꺼번에 사라진 뒤, 병약한 모친을 대신해 홀로 집안의 생계를 꾸려왔다. 김민철은 가족에게 부친처럼 직접적인 신체폭력만 행사하지 않을 뿐, 원작의 김민철과 다를 바 없이 영선의 대학 등록금을 강탈하고, 영선 모(서영화)의 “등골을 빼먹으며” 살아간다. “칼에 찔린 아빠라는 인간이나, 찌른 오빠라는 인간이나 나한테는 똑같은 악마”라고 외치는 영선의 절규는 민철이 지닌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영선의 입장에서는 둘 다 그녀와 모친의 인생에 해만 끼치는 존재들이다.

영선의 비극은 월추리 마을 전체에서 이미 오래 지속되어 왔던 비극이기도 하다.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이장(임하룡)이 월추리를 대표하는 동안, 월추리의 여성들은 붕어(우현)의 아내처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거나 영선 모와 칠성 처(김수진)처럼 병들었거나 영선과 이장의 딸 광미(심달기)처럼 못 견디고 자꾸 집을 나간다. 마을 밖의 여성도 남성들을 위로하는 고마담(한선화) 같은 역할로만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곳이 수몰예정지구라는 점은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월추리는 사기꾼 최경석이 오기 전부터 서서히 자연 소멸을 향해가는 곳이었다. 월추리에 18년 만에 태어난 아기가, 최경석이 자신의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진숙(오연아)을 강제로 데려와 병률과의 사이에서 낳게 한 아이라는 점은, 이 공동체가 여성들을 학대하고 착취함으로써만 존속될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최경석이 약속하는 거짓 구원의 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암울한 여성들에게 가장 절실한 유혹으로 다가간다.

하지만 <구해줘2>는 영선을 비롯한 여성들 시점의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끌고 나가지 못한다. 오히려 민철에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을 더해 ‘사이비 아버지’와 외롭게 싸우는 ‘돌아온 탕자’이자 히어로의 역할을 부각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다시 폭력적 남성의 계보를 이어나가는 모순을 반복한다. <구해줘1>에서 사이비 교주 백정기가 영모이자 아내로 선택한 소녀를 의로운 네 명의 청년이 구하고 공동체를 구해낸 구도가 다시 한번 되풀이되는 것이다. 사이비 아비들과 아들들이 대결하는 동안 여성들은 계속해서 ‘구해줘’라는 목소리로만 남는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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