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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기고]국민 건강을 생각, 책임있는 게임산업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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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 넘은 나이에도 가끔 해야 할 일을 미룬 채 게임을 할 때가 있다. 그 아름답고 현란한 색감과 경쾌한 소리, 그리고 업그레이드되는 새로운 레벨을 접하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게임에 몰입하다보면 잘 시간을 훌쩍 넘기는 날도 있고 그런 날 아침이면 잠이 모자라 하루가 몽롱하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을 청소년들이 무슨 수로 뿌리치겠는가 싶다.

경향신문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게임만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공중보건학적 모델에 따르면 중독 문제는 매체, 사람, 환경 세 가지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게임에 적용시켜보면 몰입감이나 흥미성과 같은 게임의 특성, 충동성이나 우울 등 개인의 특성, 그리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광고나 언제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 등이 어우러져서 게임 관련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나 한국의 젊은 친구들에게 게임은 크나큰 유혹일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딱딱한 책상 앞에서 공부하기를 강요받고,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고, 제대로 노는 시간이나 공간이 확보되지도 않는 삶을 사는 이들의 환경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들이 어디로부터 위로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런 청소년들에게 게임은 손쉬운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게임과 관련한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환경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현실의 문제를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주변 부모들이 자녀와 게임 사용과 관련한 갈등만 없어도 훨씬 관계가 좋을 거라고 한탄하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현실이 이럴진대 ‘게임중독’은 질병이 아니라고, 질병코드화는 효자산업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라고, 사실상 게임은 인지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우기기만 하면 있는 문제가 없어지기라도 한다는 건지 답답할 노릇이다. ‘게임사용장애’로 확정되기까지는 좀 더 많은 연구근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질병개념에 반대하는 이들조차도 게임과 관련한 피해는 인정한다. ‘게임사용장애’가 질병코드화되는 것이 게임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알코올사용장애’라는 진단과 관련 문제를 모두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술 판매가 금지되거나 판매량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이 진단이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이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게임사용장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게임사용장애라는 진단명을 ‘게임질병’이라고 부르며 호도하는 것은 비겁하다. 게임은 그 자체가 질병이 될 수 없다. 게임은 인류가 오랫동안 즐겨온 건강한 유희이다. 그러나 최근 보도되는 게임 관련 사건·사고에서 보듯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자제력의 부재, 이로 인해 일상생활이 곤란해지는 상황의 지속, 이로 인한 사회적 관계에서 심각한 장애의 발생으로 요약되는 상태는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을 지나치게 한 결과로 발생하는 임상적인 비정상적 상황을 말한다. 게임산업이 오히려 과도하게 게임에 빠져 문제가 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한다면 더 많은 신뢰를 얻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은 앞으로도 우리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강력한 성장동력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책임있는 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혹시나 유발할 수 있는 폐해는 없는지 면밀히 살피고, 중독이라는 폐해로 고생하는 사람이 드물게라도 발생한다면 이를 예방할 수 있도록 먼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를 오히려 공중보건학적 모델에 기초한 체계적인 예방과 개입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청소년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는 게임, 그 관심에 부응하는 길은 수많은 게이머의 건강과 웰빙을 생각하는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다. 게임산업이여,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라.

<정슬기 한국정신보건사회 복지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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