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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충무로에서] 제이노믹스는 어떻게 기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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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다. 국사 선생님이 하루는 책을 덮으시더니 "이후 역사는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서울대에서 사학을 전공했던 선생님 말씀에 다들 의아해했다. 선생님은 해방공간 이후 현대사는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생존해 있기에 객관적일 수 없다는 식으로 설명하셨던 기억이 난다.

같은 이유로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역사에서 완전히 묻힐 뻔했다. 이이를 영수로 내세운 서인에 맞서 극심하게 대립했던 동인들 때문이다. 그들이 광해군 때 주도해서 완성한 '선조실록'에는 십만양병설이 한 줄도 없다. 이후 인조 때 서인들 중심으로 다시 편찬한 '선조수정실록'에선 확 달라진다. 십만양병설과 이를 주창한 이이에 대한 칭송이 지나칠 정도로 부각된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로 나눠줬다는 '참모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에 나오는 얘기다. 저자 신병주 건국대 교수는 "정치권력을 획득한 서인들이 자파 세력의 위상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으로 십만양병설을 활용한 점은 틀림이 없다"고 평했다.

다행히도 경제는 통계 숫자를 바꾸지 않는 한 역사에서 왜곡하기가 쉽지 않다. 다른 나라와 비교한 성장률이 어땠는지, 과거와 비교한 일자리 증가율이 어느 정도인지만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다. 다만 그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는지는 역사에서 서로 다르게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경제 통계 숫자는 제이노믹스가 잘못 가고 있음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매번 발표할 때마다 하향 조정하는 성장률이 그렇고, 과거와 비교해 확연하게 줄어든 취업자 숫자가 그렇다.

사실 제이노믹스가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성장 일변도 경제정책 방향을 바꾸고, 소득 재분배를 통해 부의 불평등을 개선하고, 재벌 집중의 폐해를 없앨 때가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마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식으로, 권력을 잡았을 때 후다닥하지 않으면 영영 못할 것처럼 달려들면 후유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속도를 조금만 조절해 달라는 경제계 호소를, 주 52시간 근로제가 안착할 수 있도록 보완해 달라는 요청을 김영주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친정인 대기업 노조 기득권 세력은 그를 칭송할지 모르지만 역사는 다르게 기록할 것이다.

방향이 맞더라도 과속하면 결국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과 보완책 없는 주 52시간 근로제 강행은 제이노믹스가 인간답게 살게 해주겠다던 경제적 약자들 일자리를 줄여놨다. 반면 대기업 노조원들은 임금 상승과 주 52시간제 혜택을 고스란히 가져갔다. 고통은 서민이, 혜택은 고임금자들이 누리는 결과를 낳았다.

역사는 제이노믹스를 어떻게 기록할까. 최저임금 상승과 주 52시간 외에 무엇을 기록할지 궁금하다.

[송성훈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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