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임의진의 시골편지]부산 갈매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을 ‘모국어’라 한다. 아버지의 말 부국어가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배운 말 모국어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가 뭔 쓰잘데없는 말을 하려고 하면 어머니가 무안을 주면서 입을 딱 다물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머니가 이기고 산다. 아버지가 이기고 사는 집은 희귀하다. 집에서 이기지 못해 밖에 나가 억지 대장노릇을 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긴다. 지고 사는 게 안에서나 밖에서나 현명한 처세일 텐데.

수가 많다는 말을 경상도 사람들은 ‘쎄삐릿다, 억수로 많다, 항 거석 있다, 수두룩 빽빽하다, 천지삐까리 많다’고 한다. 전라도 사람들은 ‘솔찬하다, 겁나다, 허벌나다, 오살나게 쎄뿌렀다, 시꺼멓다’ 그런다. 오월 하루, 역사의 현장 광주에 시민들이 많이 모였다. 내가 관장으로 있는 메이홀에선 민중미술가 김봉준 화백의 신작전 ‘오월 붓굿’이 열렸다. 김샘과 내가 맺어온 인연의 결실로 광주에선 첫번째 전시였다. 그간 한번쯤 전시할 만도 했을 텐데, 우리나라는 이만큼 지역 장벽, 경계가 높고 두껍다. 하루는 메이홀 앞이 충장로와 민주광장인데 ‘태극기 부대’가 지나면서 야구장에서나 들었던 ‘부산 갈매기’를 부르며 구호를 외쳤다. 오늘 야구하는 날인가? 야구장에 부산 팬들이 와서 부르면 따라서 불러주던 노래. 어머니 말을 징하게 안 듣는 사내들이 억수로 모여들더니 민주영령들을 추모하는 날에 조롱 삼아 ‘부산 갈매기’를 열창한다. 반응은 분노할 것도 없고 그냥 조용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부산 인물을 찍어준 광주 시민들.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줘서 다행이네 뭐.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지금은 그 어디서 내 모습 잊었는가” 부산 갈매기야! 전라도 친구들을 잊으면 되겠는가. 잊지 말아다오. 좋은 뜻으로 해석하마. 노래가 무슨 죄냐.

언론에 거론되는 유망 정치인들이 죄다 저쪽 분들인 것은 어떤 구조악에 빠진 듯하다. 갈매기는 삼면이 바다인 이 나라, 어디라도 사는데 말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