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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편집국에서] 노동정책, ‘일못’이 되지 않으려면 / 신윤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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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윤동욱
사회정책팀장


사회적 대화는 사회적 대화를 할 만한 사회적 조건이 먼저 있어야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서 지금 여기서 사회적 대화가 잘되리란 기대가 크지는 않다. 사회적 타협이 가능한 자원과 사회적 타협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과 사회적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압력이 과연 지금 여기에 있는가, 하는 회의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사회적 대화는 어쩌면 인류의 예외적 상황인 20세기 서구의 일부에서만 가능한 모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기자 같은 사회적 대화 회의론자들 좋으라고 현실의 사회적 대화 기구는 자꾸만 편향을 확증할 ‘떡밥’을 던진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노사정 합의에 이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여성·청년 계층별 대표 3명이 본회의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않아서다. 탄력근로제 합의 내용에 반대하는 이들의 거듭된 불참으로 거의 유일한 성과마저 위기에 처하자 경사노위는 의결구조를 바꾸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제발 외통수라도 그 카드만은 던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던 차에 그 안이 나오자 ‘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경사노위는 노동자·사용자·정부 각 분야에서 과반이 참여해야 의결이 성립하는데, 노동위원 4명 가운데 3명인 계층별 대표들이 회의에 불참해 의결이 불가능한 것이다. 노사정 협의의 정신을 살리는 민주주의 규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장치다. 이 규정을 개정하는 안을 던진 경사노위는 계층별 대표를 배제할 의도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맥락상 오비이락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더욱 문제는 카드의 효용성. 이렇게 압박하면 계층별 3명이 돌아올까?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노사정위에서 경사노위로 전환하면서 비정규직, 여성, 청년 같은 다양한 사회적 주체의 참여를 기획했다면, 그런 변화가 가져올 문제도 함께 대비했어야 한다. 노사정이 동등한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 사회적 대화라 해도, 어쨌든 대화의 장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은 정부와 정치의 몫이다. 단지 경사노위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정책의 방향성은 차치하더라도,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준비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최저임금위원회 구조개편안은 더욱 호기로웠다. 현재 일원화된 최저임금 결정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안이다. 3월부터 시작되는 최저임금 심의를 코앞에 두고 정부는 개편안을 던졌다. 전광석화 같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부안은 국회로 넘어갔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의 일환으로 해석될 여지가 큰 안을 야심 차게 던졌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조차 ‘반대한다’고 한다. 놀라운 예지력이 아니라도 예견할 만한 결과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바꾸려면 ‘왜 진작 바꾸지 않았지?’ 하는 의문이 드는 타이밍.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문제가 생겼다는 논란이 시작된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올해 심의부터 적용이라는 ‘속도전’ 논리는 어디서 나왔을까? 혹시나는 역시나, 공전하는 국회가 개정안을 통과시킬 생각조차 하지 않자 결국 원래의 구조로 올해 최저임금 심의가 시작됐다. 이것을 고도의 정치로 해석하는 선의가 있다면 그런 음모론은 ‘넣어둬’ 하고 싶다. 개편안이 나오면서 사퇴서를 제출한 공익위원들만 결국 사퇴하게 됐는데, 이원화 안이 두자릿수 인상에 참여한 공익위원들을 바꾸려는 꼼수였다면, 그건 반칙이다.

버스 파업을 보면서도 ‘보이지 않는 손’을 향해 짜증이 난 이유는, 주당 52시간제 시행이 어제 예고된 것도 아니고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되면서 대비할 시간이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준비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노사가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준공영제 등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3자로 물러설 문제는 아니었다. 막판에 나온 지원책으로 아슬아슬하게 대부분 파업은 피했지만, 뭔가 사고만 피했단 생각이 들었다.

설득하려면 설계하고 기획해야 한다. 정책의 방향만큼 언제 어떻게 준비해서 꺼내느냐 하는 세부도 중요하단 얘기다. ‘일못’들이 노동정책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지우고, 사회적 대화를 살리고, 노동존중 사회로 다가갈 기회가 이 정부에 아직 3년이나 남았다.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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