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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한삼희의 환경칼럼] 미래 세대를 위해 얼마만큼 양보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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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노란 조끼’와 ‘공부 파업’… 기후변화 이슈 두고 기성세대와 미래 세대의 대립

이산화탄소는 ‘축적 오염’… 지금 배출하면 후손에 피해… ‘미래에 대해 책임감’ 가져야

조선일보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작년과 올해 유럽에서 두 가지 대중 운동이 진행 중이다. 하나는 프랑스의 ‘노란 조끼’, 다른 하나는 스웨덴에서 시작돼 번진 ‘공부 파업(school strike)’이다.

노란 조끼는 프랑스 정부가 기후변화 대책으로 유류세 인상을 발표하자 저소득층 중심으로 작년 11월부터 매주 토요일 항의 시위·집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마크롱 정부가 부유세는 낮춰놓고 서민은 수탈한다며 투석, 방화, 약탈로 발전했다. 공부 파업은 작년 8월 스웨덴의 당시 15세 그레타 툰베리라는 여학생이 학교 수업을 빼먹고 스톡홀름 의사당 밖에서 기후변화에 적극 대처를 촉구하며 시작한 1인 시위였다. 이것이 반향을 일으켜 현재까지 157국에서 4500차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공부 파업이 벌어졌다. 노란 조끼는 기성세대의 폭력적 시위이고, 공부 파업은 청소년들의 불복종 항의 운동이다. 둘 다 기후변화가 촉발 요인이거나 중심 이슈인데 주장은 정반대다.

공부 파업을 주도한 툰베리는 아스퍼거증후군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 세계에 몰입해 있어 상대방 말과 행동이 다른 걸 용납 못한다. 정서적 상호작용이 서툴러 상대 기분이 상하는 것을 개의치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얘기를 한다. 툰베리는 정부와 기성세대가 말로는 기후변화가 인류 생존을 위협한다고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계속 화석연료를 펑펑 쓰는 언행 불일치의 상황을 참지 못한다.

툰베리는 온라인 연설에서 "내가 100살까지 산다면 2103년까지 살아 있게 된다"고 했다. 반면 어른들은 미래를 내다봐야 기껏 2050년이라는 것이다. 각국 기후 대책도 대개 2050년까지의 대책이다. 툰베리는 "2050년이면 나는 아직 인생 절반을 더 살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 기성세대가 하는 일이 자기와 자기 다음 세대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본질적으로 세대(世代) 갈등을 내포한다. 원인 물질인 이산화탄소(CO₂)의 대기 중 수명이 길기 때문이다. CO₂는 배출 후 상당 부분은 바다·토양·식물 등 환경 속으로 흡수돼 사라지지만 일부는 끈질기게 남아 있게 된다. 100년이 지나도 절반, 200년이 지나도 3분의 1, 1000년이 지나도 15%는 남아 있는다고 한다. 흘러가 없어지는 오염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차곡차곡 쌓이는 오염이다.

기후 시스템은 온실가스 축적으로 기온 상승 충격을 일정 수준까지는 견뎌낼 것이다. 그러다 어떤 임계점(tipping point)을 넘기면 기후 요소들이 연쇄반응을 촉발하면서 더 버티지 못하고 한꺼번에 붕괴 현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문제는 기후 붕괴의 시점이 언제가 될지 내다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 이전 단계까지는 별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어 사람들은 위험을 절박하게 느끼기 힘들다.

CO₂의 장(長)수명 때문에 기후변화는 가해 집단(현 세대)과 피해 집단(후손 세대)이 시간적으로 분리된다.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로 우리가 당장 피해 보는 것은 별로 없다. 피해는 적어도 수십 년 지나고 난 다음 후손 세대가 입게 된다. 원인 행위를 일으키는 현 세대는 아무래도 후손 세대가 받게 될 고통에 대한 인식이 약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후손이긴 해도 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후변화의 피해가 어떤 형태로, 얼마나 심각하게 나타날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반면 유류세 인상처럼 기후변화 대책을 시행할 경우 현 세대가 받아야 할 고통은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내가 지금 희생과 양보를 할 때 그 혜택이 50년 뒤, 또는 100년 뒤 지구 반대편의 누군지도 모를 미래 세대의 어떤 사람에게 돌아간다면 정부가 납세자들에게 비용 부담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매 세대가 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기후변화 해결은 더 요원해진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점점 쌓여 미래 세대가 겪을 고통의 크기는 커진다. 미래 세대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아직 너무 어려 지금의 정부 정책 방향에 영향을 끼치거나 결정권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현 세대의 선택으로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다. 툰베리라는 소녀가 미래 세대를 대변해서 말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노란 조끼 시위대의 발언권이 더 강력해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도 노란 조끼의 압력을 못 이겨 유류세 인상을 유보시켰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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