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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태평로] '과거사委' 망령이 미래를 괴롭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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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발목 잡는 과거사委, 진짜 진실 규명 아니라 목소리 높이기 위한 도구

가장 억지스러운 이념 운동

꼭 4년 전인 2015년 5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황교안 법무장관을 총리에 내정하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말했다. "국민을 두 편으로 분리시키는 두 국민 정치를 하겠다는 명백한 선전포고다." 그는 황 장관을 '예스맨'이라고 비난했다. 엊그제 5·18 행사장의 황 대표 앞에서 문 대통령은 야당을 겨냥한 듯 "독재자의 후예"라는 말을 썼다. 그 순간 나라가 쪼개지는 소리를 들었다는 독자가 많다.

그는 국민을 '독재자의 후예'와 '민주 세력의 후손'쯤으로 편 가르는 듯했다. 5·18 영령들 앞에서 야권의 '망언'을 앙갚음하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사전에서 화해와 통합이란 단어를 지웠다. 야당으로부터 '좌파 독재'란 비난을 받자 대통령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나온 셈이다.

독일 지성 게랄트 휘터는 책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말했다. "우리 안에 있는 지극히 인간다운 무언가를 찾아낸다는 것, 그것이 바로 21세기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그런데 지금껏 문 대통령이 말해온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는 휘터가 말한 보편적 인간이 아니다. 전 국민을 네 편 내 편으로 가른 뒤 한쪽만을 '사람'으로 일컫는다. 대통령은 그 프레임에 갇혀 있다.

지난 반세기 통칭 '진실·화해 위원회'가 45개국에 있었다. 아르헨티나·칠레·남아공처럼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독재와 내전을 겪은 나라가 한시적으로 설치했다 최종 보고서를 내고 마무리했다. OECD 회원국 중엔 캐나다·독일·미국·한국을 꼽을 수 있는데, 캐나다는 인디언 스쿨 인권문제, 독일은 옛 동독 범죄, 미국은 그린스보로 흑인 피살 사건을 조사했다.

한국은 매우 복잡하고 특별하다. 2005년 반민주·반인권 사건을 다시 밝히겠다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족됐는데, 관련 정부 조직이 '너무 산만해지자' 이명박 정권 때 정비 차원에서 과거사위 14개를 폐지하겠다고 나선 적도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엔 부처별로 적폐청산 위원회 태스크포스(TF)가 설치됐다. 그러다 작년 2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17건의 과거사 조사에 발동을 걸었다. 5·18 민주화운동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세 대통령을 거치면서 15년 동안 법률적·사회적 명예 회복, 진실 규명, 보상 등이 이뤄졌다고 봤는데, 지금 또다시 '5·18진상규명위원회' 구성이 정치권 최대 현안으로 돼 있다.

한 인기 유튜버는 이런 위원회들이 진짜 진실을 원하기보다는 "진실을 밝혀라" 하고 목소리 높이는 상황만을 이어가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대통령은 '광주의 존엄'과 '광주 밖의 존엄'을 대립시키지 말아야 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으나 이제 과거사위는 대한민국 상설 기구가 됐다. 과거사위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권 바뀌면 지금 과거사위가 조사했던 것을 다시 조사하고, 과거사위 자체를 수사하는 일도 벌어질 것이다. 후세 사가들은 지금 정권의 과거사위를 가장 억지스러운 이념 운동으로 되돌아볼지 모른다.

문 대통령의 광주 발언을 들은 한 지인이 말했다. "그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 그는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이 지인은 문 대통령이 대표한다는 '국민'에서 자기 이름은 빼달라고 했다. 지인은 광주에서 고교를 나왔다. 핵보유국과 비보유국 사이엔 '기울어진 가짜 평화'가 있을 뿐이다. 대통령도 모르지 않는다. 그는 북핵 폐기가 아니라 '북핵 관리'를 목표로 국내외 '인정(認定)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동력을 얻으려 과거사 투쟁에 올인 중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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