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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1] 쿨한 엘리자베스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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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의 미국인 며느리 메간이 낳은 아치 왕증손은 영국 왕위 계승 순위 7위이다. 왕위 승계에서 멀수록 뉴스에서도 멀어지는데 아치 왕증손은 부모 덕에 뉴스 초점이 되고 있다. 특히 어머니 메간 때문이다. 메간은 미국인,이혼녀, 혼혈, 현역 배우 출신이라는 4중 가십 요인을 갖고 있다. 해리·메간 결혼은 보수적 영국인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지난 19일 결혼 1년이 된 둘은 아들까지 낳고 잘 살고 있다. 메간은 시집 식구 6685만명 사이에서 무난하게 신혼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메간의 '무난한' 시집 생활엔 시조모 엘리자베스 여왕의 지원이 상당히 큰 힘이 되었다. 결혼 때도 영국 내 논란을 여왕이 잠재웠다. 여왕 측근들은 두 사람이 사귀는 걸 걱정해 보고했는데 여왕은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모습에 말 꺼낸 측근이 더 놀랐다. 즉위 67년 된 93세 여왕이 21세기에도 국민 존경을 받는 비결은 왕실이 세상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데 있다.

여왕 부처가 아치를 처음 만나는 장면〈사진〉 에서도 여왕의 열린 자세가 보인다. 사진엔 아치와 어른 5명이 등장한다. 여왕 부부와 해리 왕손 부부, 아치의 외할머니 도리아다. 왕실 공식 행사에 외가 쪽 인사가 등장하는 일은 상당히 드물다. 여왕이 묵인하지 않았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그냥 외가 식구가 아니라 외국인에 흑인 아닌가.

왕실이 얼마나 꼼꼼하게 격식을 따지는지는 호칭을 봐도 알 수 있다. 메간과 윌리엄 왕세손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의 정식 명칭은 공주가 아니라 그냥 서식스 공작 부인과 케임브리지 공작 부인이다.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도 보통 공주로 불렀지만, 실제는 다이애나 웨일스 공주(Diana, Princess of Wales)였다. 왕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간과 케이트의 자녀는 바로 왕자·공주라 부른다. 이번에 출생한 아치도 태어나자 바로 서식스 아치 왕자(Prince Archie of Sussex)가 됐다. 비슷해 보이지만 엄격히 다르다. 다이애나 공주가 왕족이었다면 'Princess Diana of Wales'가 된다.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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