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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일사일언] 카레에 상상력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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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선우훈 만화가·만화평론가


7명의 가족과 유년을 보냈다. 밥상에 오르는 계란 프라이도 늘 7장이었다. 노른자까지 푹 익은 뻣뻣한 계란 프라이였지만, 귀한 반찬이었다. 성인이 돼 밥을 혼자 지어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계란 프라이를 인당 두 장씩 부쳐 먹어도 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감히 혼자 두 장씩이나! 굳이 뒤집어 노른자를 푹 익힐 필요도 없었다. 몇 번의 실험을 거친 후, 내 취향은 반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란 프라이는 비빔국수나 짜장라면에 곁들여도 좋지만, 역시 카레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름의 카레 조리법도 개발하게 됐다. 나는 카레에 마늘을 넣는다. 구운 마늘 향이 식욕을 돋울 뿐 아니라, 개운한 맛이 난다. 양파 대신 파를 넣는 것도 나만의 비법이다. 양파의 뭉그러지는 식감과 특유의 향보다는 어쩐지 구운 파의 맛이 카레와 어울리는 것 같다. 어떤 일본 카레 가게에서는 얇게 썰어 튀긴 마늘을 올리지만, 나는 좀 더 도톰하고 길쭉하게 썬 것이 좋다. 씹었을 때 감자 비슷한 부드러운 식감 때문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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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가 하는 일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아직 대답이 어렵지만, 요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음식의 목적과 재료 간의 어울림을 살피고, 전체의 완성도를 위해 조금씩 개선해 나간다. 점수 매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 잘 즐기기 위해서. 내게 만화적 상상력이란, 카레에 파와 마늘을 넣고 그 위에 반숙 프라이를 여러 장 올리는 것이다. 일찍이 당연했던 것을 달리 바라보고, 또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적극 도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이란 게 꼭 기상천외할 필요는 없다. 계란도 마늘도 어릴 때부터 먹어온 재료이지만, 썰기와 굽기의 정도를 바꿔가며 맛의 구조를 이리저리 조립하는 재미도 충분히 크니까. 그렇게 완성된 온전한 나만의 창작물, 적어도 그 카레는 내 입에 딱이다.

[선우훈 만화가·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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