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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시선2035] 몰카범 용의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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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준영 정치팀 기자


“지금 뭘 찍고 계시는 거예요?” 지난해 어느 봄날, 퇴근 후 들른 한 일본식 술집에서 소소한 ‘혼술’을 즐기다, 왼쪽 여성의 차가운 목소리가 꽂혔다. 짐짓 화난 표정의 그와, 순간 당황함이 어린 내 얼굴. 흘깃흘깃 쳐다보는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제 몸을 찍고 있었잖아요.” 술집 사장이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묻자 여성은 다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이미 부질없었다.

이 일이 다시 떠오른 건 최근 남성 국회의원 A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서다. 그는 “어떤 여성분이 지속적으로 의원실을 찾아오고, 제 동료 의원에게 마치 제 짝꿍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게 행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한 지지자는 댓글에 “접근 못 하게 해야 한다. 잘못하면 의원님을 성추행범으로 고소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썼다.

A 의원이 그간 미투 운동 관련 남성의 무고죄 악용 방지를 위해 애써온 대표적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그의 글과 그 댓글들은 자못 새롭게 다가왔다. 그와 가까운 동료 의원 B가 과거 ‘펜스룰’을 두고 “당황한 일부 남성들이 잠재적 성범죄자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쓴 글을 읽었던 터라 더욱 그렇다.

A와 그의 동료 의원들은 지난 1년여 미투 운동을 물심양면 지원하며 우리 사회를 진일보시켰다. 하지만 ‘성희롱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자신의 무죄를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이 발의(논란 끝에 철회됨)되는 등 다소 과한 면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미투 운동을 부정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선량한 여성의 피해’를 드러내는 게 중요한 만큼, ‘선량한 남성의 피해’도 조금이나마 이해하자는 거다. ‘열 명의 범인을 놓쳐도 단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헌법적 가치다.

다시 1년 전 술집 안, 몰카범 용의자(?)였던 내가 어떻게 무고한 시민으로 돌아왔을까. 구세주는 오른쪽에 앉은 다른 여성의 대리 해명이었다. “화면을 보려고 본 건 아닌데…, 이 남성분 그냥 인터넷만 하고 계셨어요. 카메라 같은 건 전혀 안 켰고요.” 휴….

김준영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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