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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데스크의눈] 축제, 우리 삶 속에 살아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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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품바축제·진주 유등축제… / 탈일상적 콘셉트로 내실 다져 / 공동체적 질서 회복하는 ‘놀이’ / 소통·나눔 위해서 ‘난장판’ 필요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 …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지리구 지리구 잘한다/ 품바하고 잘한다 …’

누구나 들어봤을 ‘각설이타령’이다. 후렴구에 나오는 ‘품바’란 장단 구실을 하는 의성어이지만 지금은 걸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신재효의 ‘한국판소리 전집’ 가운데 ‘변강쇠가(歌)’에서 처음 등장하는 ‘품바’는 타령의 장단을 맞추는 소리라 하여 ‘입장고’로 적혀 있다. 입으로 뀌는 방귀(입방귀)라는 설도 들린다. 이는 피지배계층인 가난한 자, 역모에 몰린 자, 관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자, 소외된 자 등이 걸인 행세를 하며 지배계층인 기회주의자, 부정으로 치부한 자, 아부로 관직에 오른 자, 매국노들의 집을 찾아 문전에서 입방귀를 뀌어 “방귀나 처먹어라 이 더러운 놈들아”라는 뜻을 전했던 것이라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과 분을 내포하고 있다. 품바란 또 가진 게 없는 허(虛), 텅 빈 상태인 공(空), 잡을 수 없는 시(時)라는 의미로, 각설이들이 구걸할 때 “한 푼 보태주세오”라는 쑥스러운 말 대신 쓴 용어였다. 아울러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세계일보

김신성 문화체육부장


이러한 취지를 살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음성지부는 궁핍했던 시절, 풍자와 해학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선조들의 얼을 되새기고 꽃동네 설립의 계기를 마련한 거지 성자 최귀동 할아버지의 숭고한 인류애를 기리고자 2000년 음성품바축제를 출범시켰다. 스무살 성년을 맞은 올해엔 오늘부터 26일까지 충북 음성군 설성공원 일원에서 더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펼친다. 움막짓기로 품바촌을 형성하고, ‘2판4판 난장판’ 댄스페스티벌을 벌인다. 품바비빔밥 경연대회와 품바패션쇼, ‘20살 커플링 찾기’, 품바가요제, 1000명이 동시에 승자를 가리는 ‘천인의 엿치기’, 그리고 봉사단원들이 전국 노숙인 1000명을 찾아가 의류와 음식을 제공하고 자활 상담도 한다. 음성품바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유망 축제로 선정되는 등 꾸준히 내실을 다져왔다.

대개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축제에 대해 ‘전시행정’ ‘예산낭비’ ‘축제공화국’ 등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지만, 반복되는 일상의 틀을 깨고 ‘놀이적 난장의 경험을 선사하는 문화현상’의 구실을 넉넉히 해내는 축제들도 있다. 부여 서동연꽃축제, 평창 효석문화제, 안성 바우덕이축제, 김제 지평선축제, 진주 유등축제, 논산 젓갈축제, 순천 남도음식문화큰잔치 등이다.

합리성과 기능성, 효율성만 중시하는 사람들은 축제에 관광객이 얼마나 왔는지,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어떤지, 특산물은 얼마나 팔렸는지 등을 따진다. 축제에 대한 이해부족과 단기 경제성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려는 도구적 사고는 오히려 유망한 축제가 들어설 자리를 빼앗고 만다.

신화시대부터 인류는 축제라는 놀이를 통해 삶의 무게를 덜어내며 일상을 유지해왔다. 고단한 현실을 견뎌내는 힘을 축제로부터 캐낸 것이다. 과거엔 농제, 당제, 시제, 굿 등의 이름으로 마을마다 축제가 일상처럼 벌어졌다. 인구와 마을 수로 비교하자면 현재의 축제 수는 턱없이 줄어든 셈이다.

현대인은 물질적 풍요를 강조하던 과거와는 달리 정신적 안락을 우선시한다. 경제적 여유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관광 스포츠 등을 통한 양질의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건강한 삶을 원한다.

축제를 종종 먹고 마시고 노는 일탈행위 정도로 여기지만, 하비 콕스는 “일상의 억압적 질서나 권위로부터 벗어나 특별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창조적인 난장을 벌임으로써 공동체적 질서를 회복하는 문화적 장치이자 놀이가 축제”라고 정의했다. 우리의 축제에도 난장판이 필요하다. 탈일상적인 콘셉트가 반영되어야 한다. 테마파크를 떠올리면 쉽다. 일상과 단절된 이곳에서의 특별한 체험은 오히려 일상의 질서를 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혼밥’ ‘혼술’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에 소통과 나눔을 위해서라도 잃어버린 축제를 되찾아야 한다. 축제는 죽어서 박제될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삶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

김신성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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