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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정동칼럼]가정폭력과 그 방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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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김포시의회 의장의 가정폭력에 의한 부인 사망 사건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공인(公人)이 아내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폭력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자유한국당 소속의 시의회 의원 및 국회의원들의 주장을 볼 때 이 사건이 정당 간의 논쟁거리로 뒤바뀌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부실한 공천절차 속에서 자격미달의 시의원을 임명한 민주당이 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경향신문

가정폭력은 여성인권의 바로미터이자 ‘사적영역’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고문과 유사하다고 한다. 노인폭력, 아동폭력 그리고 남성 배우자에 대한 폭력도 있지만 대다수 가정폭력은 남성 배우자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가정폭력은 젠더에 기반한 사회적 폭력현상이다. 가정폭력이 길거리나 가정이 아닌 공간에서 행해지는 폭력과의 차이는, 그것이 부부, 부모자녀와 같이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반복되기 쉽고 가정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발생하여 잘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7년 발표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폭력을 경험한 대다수 피해자들이 폭력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그냥 당하고 있었다”가 42.8%, “자리를 피하거나 집 밖으로 피했다”가 33.3%로 대다수 피해자가 별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주위에 도움을 청했다”는 4.9%, “방어하거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맞대응을 했다”는 20.6%로 25% 정도에 그쳤다. 만약 길거리에서 동성 간에 물리적 폭력이 발생했다면 과연 이런 대응 경향이 나타났을까. 가정폭력은 공론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고약한 범죄이다. 최초 사건 발생 6년 이후에야 보호시설이나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전체 응답자의 39.1%에 달했다. 신고하기까지 오래 걸린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기관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서” “자녀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창피해서” “도움을 요청해도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배우자가 아는 것이 두려워서” 등으로 응답했다. 이렇게 가정폭력은 지속적이기 쉽고 표면화하기 어렵다. 가정폭력의 폭력성을 일반적 형사사건의 기준보다 더욱 무겁게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응급조치나 긴급임시조치(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와 제지, 상담소, 보호시설의 인도 등)가 실효성 있게 행해지는지도 미지수이다. 경찰에 신고했던 피해자들도 “경찰관들이 피해자의 충격과 공포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다”는 항목에 부정적 응답을 한 경우가 35.7%였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응답을 한 경우가 절반에 이르렀다. 사법경찰이 가정폭력 사건에 대응할 때 젠더 차별구조에 대한 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인식이 없다면 ‘가족’이란 친밀성의 가장 아래 폭력이 허용되는 치외법권으로 존재할 것이다.

특히 가해 배우자가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고 유능한 인물이라면 여성 피해자는 더더욱 폭력을 공개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개는 자신뿐 아니라 자녀가 누리는 사회경제적 지위, 나아가 남편이 속한 조직의 명망까지 추락시킬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법 제4조 제1항에는 “누구든지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2항에는 아동교육이나 노인치료, 장애인 시설 혹은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종사자 등은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우리들’이 선뜻 가정폭력을 신고할 수 있었을까. 가정폭력(범죄)으로 확신할 수 없어서, 개입했다가 오히려 비난을 받을까봐, 아니면 이후의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게 될지 두려워서 신고를 못하지 않았을까. 다른 한편, 법 제9조에서 검사는 가정폭력 사건의 성질 등을 고려해서 형사사건이 아니라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고 이때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렇게 피해자에게 그 처벌 여부를 묻는 것은 주위 공동체가 가정폭력 개입을 자제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쌍의 태도이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의 일’이라는 태도이다. 전 김포시의회 의장의 가정폭력에 대해 정말 주위에서 아무도 몰랐을까. 부인의 가족, 친족, 친구, 이웃, 학교, 복지단체들은 다 어디에 있었을까. 폭력에 개입하고 조언해 줄 커뮤니티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결말을 가져오지는 않았으리라. 그래서 이 사건의 일차적 책임자는 폭력 행위자이지만, 가정폭력은 ‘잘못된 일’이라고 명료하게 발설하지 않았던 다층적 방관자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거기에 여당과 야당이 나뉠 수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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