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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현장에서/김수연]아이돌 사관학교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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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서울공연예술고 학생들이 학교의 부당한 처사를 알리려고 제작한 영상의 한장면.유튜브화면캡처서울공연예술고 학생들이 학교의 부당한 처사를 알리려고 제작한 영상의 한장면.유튜브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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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이 학교가 정말 정국(방탄소년단·BTS 멤버)이 나온 곳이라고? 학교가 미쳤군!”

올해 초 서울공연예술고 학생들이 학교 비리를 폭로하며 업로드했던 유튜브 영상 ‘누가 죄인인가’에 한 외국인이 단 댓글이다. 15개 언어로 자막 처리된 이 영상을 본 수많은 한류 팬들은 ‘끔찍하다’ ‘학생들을 응원한다’는 글을 남겼다.

판사, 검사, 의사보다도 연예인이 선망의 직업으로 꼽히는 요즘 서울공연예술고는 ‘아이돌 사관학교’로 불린다. 여성 아이돌그룹 ‘미쓰에이’ 출신이자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톱스타 반열에 오른 수지, 한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이 학교 출신이다. 그 외에도 많은 스타가 이 학교를 거쳤다.

그런데 수많은 별을 쏟아내는 인큐베이터인 서울공연예술고가 지난해 학부모와 학생들의 폭로로 민낯이 드러났다. 학생들은 학교 관리자의 사적 모임과 술자리에 차출됐다. 학생들은 “군부대 공연을 갈 때는 교사들로부터 ‘공연 중간마다 군인들에게 스킨십을 해주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분기당 일반 고교의 3배에 이르는 123만 원의 학비를 내면서도 ‘학습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공인 영상 수업에 필요한 컴퓨터와 영화 제작 장비가 낙후돼 학생들이 사비를 들여 구매해야 했다. 실용음악과, 실용무용과 전공 활동에 꼭 필요한 방음시설과 환기시설도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 사태는 ‘학생’, 그리고 ‘예술가 지망생’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인식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학습할 권리, 안전할 권리, 성장에 도움이 되는 교육 환경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유린한 처사다. 배우, 가수 지망생들은 훈련 과정이라며 수시로 무임금 공연에 내몰렸고, 일부 군부대와 남학교 공연 중에는 관객이 공연을 하는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일도 벌어졌다.

용기를 낸 학생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유튜브 등을 통해 사실을 폭로하며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대대적인 감사를 벌였고 20일 ‘학생 인권을 보장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예술특목고 운영 취지에 적합하게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학교 밖 공연에 대해서는 피해 예방책이 포함된 계획을 수립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시교육청의 조사와 권고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대응에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공연예술고 사건이 알려지면서 포털과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우리 학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번 사태는 수면에 드러난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는 신호다. 이들은 ‘공연예술계’라는 치열한 전쟁터에 진출하기 전 남다른 훈련과 배움을 택한 학생들이다. 그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하면서 제2의 수지, 정국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까.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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