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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분수대] 밑 빠진 버스에 물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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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하현옥 금융팀 차장


지출은 소득이나 수입에 따라 이뤄질 수밖에 없다. 버는 돈보다 씀씀이가 크면 빚을 지게 된다. 빚을 못 갚으면 파산한다. 가계와 기업이 예산 범위 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적자를 아랑곳하지 않는 헤픈 씀씀이에도 거뜬하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기업이 생존을 유지한다. 사회주의 체제 내의 국유기업이다.

국유기업의 비효율을 설명하기 위해 헝가리 경제학자 야노스 코르나이가 주장한 것이 ‘연성예산제약’이다. 정부가 적자를 보전해주는 탓에 수입과 무관하게 예산을 집행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부작용도 있다.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이 양산된다.

연성예산제약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버스 준공영제다. 버스 업체에 적자가 발생하면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재정으로 지원한다. 수익성만 따져 주민에게 꼭 필요한 적자 노선을 폐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울 등 7개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버스의 공공성은 확보했지만 도덕적 해이는 피할 수 없다. 연봉 잔치와 친인척 채용 등 경영은 방만해졌다. 정부 지원금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지자체 지원금은 1조652억원에 달했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각 지자체의 재정지원 규모가 도입 당시보다 최대 170% 늘어난 곳도 있다.

버스에 쏟아부을 세금은 더 늘어날 듯하다. 주 52시간 근무 졸속 추진으로 버스 대란이 빚어지려 하자 정부는 광역급행버스와 일반광역버스 준공영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조원가량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추산이 나온다.

연성예산제약 덕분에 사회주의 국가의 국유기업은 ‘철밥통’으로 불렸다. 어찌 보면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주는 버스 회사도 다를 바 없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야 하는 납세자의 등골만 더 휘게 됐다.

하현옥 금융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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