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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장애인구역 불법주차 신고했더니 "왜 일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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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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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H씨(36)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지난 15일 오후였다. H씨가 다니는 재활 피트니스센터의 입주 건물 관리소장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다짜고짜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돼 있는 일반 차량을 신고한 것이 맞느냐"고 H씨를 다그쳤다. 그는 "해당 건물에 있는 사장님이 식당을 해 물건 납품하는 것 때문에 잠깐 차를 댄 건데 그걸 신고하면 어떻게 하냐"며 "왜 멋대로 신고를 해서 일을 이렇게 키우느냐"고 비난했다. 군대에서 다리를 다쳐 장애인이 된 H씨가 15일 해당 건물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주차된 일반 차량을 생활불편신고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신고하자 건물 주차를 관리해야 할 관리소장이 오히려 H씨를 다그친 것이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H씨는 같은 날 해당 건물의 업주 중 한 명인 건물 관리 운영부회장이라는 남성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 문자에는 '차후 귀하 차량의 주차장 사용을 금지하오니 다른 곳을 이용하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운영부회장도 H씨의 신고로 과태료를 부과받은 전력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H씨는 이 사실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했고, 해당 게시글은 댓글이 당일 1200개 이상 달리며 주목을 받았다. 사태가 커지자 관리소장과 부회장은 뒤늦게 사과하기 위해 H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H씨가 연락을 받지 않자 문자로 사과의 뜻을 표했다.

운영부회장은 "욱하는 마음에 문자를 보낸 것은 사실"이라며 "내가 잘못한 것은 맞고 사과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H씨는 16일 이들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협박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설치가 법제화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비장애인 차량을 버젓이 주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불법주차에 대해 신고한 이들에게 적반하장 격으로 비난과 불이익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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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주정차 등 위반행위를 신고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 '예민하다'는 등 오히려 비난이 쏟아지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장애인 권익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 모씨(62)는 신고로 인해 언어적·물리적 보복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씨는 "신고를 몇 차례 하자 동네 주민으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듣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신고 직후 이씨의 차량에서 6~7차례 못 등으로 긁힌 자국이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달 한 커뮤니티에서는 "아파트 단지 내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불법주차가 만연하고, '카파라치(자동차+파파라치의 합성어)'의 신고 및 과태료 부과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관리사무소 공고문이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이에 대해 "위반을 신고해도 전혀 포상금이 없는데 카파라치라고 매도하는 것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카파라치는 자동차 신호 위반이나 과속 등을 촬영해 포상금을 타는 전문 신고꾼을 의미하는데 공익을 위해 신고한 이에게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설치와 관련된 법률은 1997년 4월 제정됐다. 장애인을 위한 차량임을 식별하는 표지가 부착되지 않은 자동차는 이 구역에 주차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있다. 이를 위반하고 주차할 경우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되며 주차 방해를 한 경우에는 과태료 50만원을 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대한 불법 주정차 신고는 늘고 있다.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애인전용주차구역 불법 주정차 등 위반행위 건수는 2013년 5만2135건에 불과했지만 2018년 42만292건으로 6년 사이에 8배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위반 건수가 급증한 것은 앱을 통해 신고가 가능해지는 등 신고절차 간소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장애인전용주차구역과 관련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도 확실하게 정착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에 대한 전반적인 시민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동운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 센터장은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은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누군가에게는 없으면 안 되는 절실한 공간이기에 이를 우리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는 구성원에 대한 배려로 남겨두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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