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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 지금 이 땅에 만들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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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목회 박람회' 여는 박원호 총장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라면 죽어서 가는 '천당'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현실에서 회복하고 구현해야 할 사명입니다. 교회 현장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목회를 연결할 수 있는지 보여드리려 합니다."

오는 20~21일 서울 정동 성공회성당에서 '하나님 나라 목회 박람회'를 개최하는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박원호 총장이 말했다. 일반 세미나가 아닌 '박람회'라는 낯선 형식을 취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박 총장은 장로회신학대 기독교교육학 교수로 11년, 미국 디트로이트교회에서 4년, 귀국 후엔 주님의교회에서 10년간 담임목사를 맡은 뒤 2년 전부터 실천신학대 총장을 맡고 있다. 학교와 목회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그는 "한국 교회는 미국 교회를 20년 시차(時差)를 두고 따라간다. 지금 미국 교회는 주류(主流)가 쇠퇴하고 있다. 교인 수도 줄고 있다. 그대로 따라갈 것인가"라고 물었다. '모든 신학교에서 가르치지만 막상 목회 현장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도 했다. 실제로 이 대학 정재영 교수가 목회자 35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설교할 때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구체적 적용 사례를 설교하기 어렵다'(44%) '성도들이 어려워한다'(20.4%) 등의 응답이 많았다. 성경 공부 교재 부족도 문제로 지적됐다.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세미나만으로는 해결책 찾기가 쉽지 않아 박람회 형식을 택했다.

조선일보

예수의 생애를 그린 작품 앞에 선 박원호 총장. 그는 “저출산으로 교인 수도 줄어드는 지금이야말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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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에는 17개 교회·단체가 부스를 마련해 노하우를 공개한다. 경기도 하남 '덕풍동마을쟁이'가 인상적이다. 덕풍교회가 중심이 되어 매주 토요일 오후 어린이·청소년들과 함께 마을 벽화를 그리고 현수막을 모아 우산과 가방을 만든다. 폐식용유는 비누로 재활용한다. 경기도 안양시 신광교회에선 '몰래산타' 이벤트를 통해 10년째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선물을 보낸다. 장로회신학대 출신 젊은 목회자들이 주축이 된 '하나님 나라와 농촌 선교'도 관심거리다. 경기 하남의 미래를 사는 교회의 '더 사랑부'는 '장애인이 없는 교회는 장애 교회다'를 모토로 삼는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현실에 어떻게 구현할지를 고민하는 교회들이다. 하나님 나라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이다.

박 총장은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어려우면 뒤집어 보면 쉽다고 했다. "'교회 왕국' '세상 성공' '이기적 교인' '집단 이기주의' 등만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박 총장은 디트로이트에서 담임목사를 사임하려 할 때 이야기도 했다. 노회(老會)에 사임 의사를 밝혔더니 조사단이 와서 '양심선언'을 요구했다. '양심선언'이란 문서엔 세 가지 요구 사항이 있었다. '후임 목사 청빙 전엔 미리 떠나지 말라. 청빙 과정에 개입하지 말라. 일정 거리 이상 교회에서 떨어져 살아라.' "실제로 이 세 가지를 어기면 연금을 제한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은 미국 장로교 전통이 들어왔지만 이런 엄격함은 제대로 전수되지 못했지요."

주님의교회는 서울 잠실 정신여고 강당 건물을 빌려서 예배 드리는 교회. 박 총장은 담임목사 재임 중 도서관과 체육관, 교실을 겸할 수 있는 새 건물을 지어 이 학교에 기증했다. 담임목사를 사임할 때는 교회에서 제공한 사택과 타던 자동차까지 두고 나왔다. 그가 졸업한 미국 유니언장로회신학대학원은 작년, 그에게 '장한 동문상'을 줬다. 아시아 출신 동문으론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젠 사회도 저출산, 교인도 줄어드는 시대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축복' '성공' '성장'을 이야기해선 안 된다"며 "초대 교회처럼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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