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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취재일기] 일본 경단녀는 골라서 취직…너무 다른 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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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월 실업률 20년 만에 최저

한 곳서 오래 일하고 정규직 많아

한국은 19년 만에 최악 성적표

초단기 공공알바가 해답 아니다

중앙일보

서유진 경제정책팀 기자


최근 출장차 방문한 일본 도쿄의 지하철 광고엔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 정보가 수두룩했다.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경비원·미화원을 모집하는 전단도 심심찮게 보였다. 외국인에게도 일자리는 열려 있었다. 방글라데시·베트남 아르바이트생이 편의점 계산원을 맡고 우버이츠(음식 배달서비스) 배달원은 상당수가 외국인이다.

일자리 호황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일본의 3월 완전실업률(계절 조정치)은 2.5%로 20여 년 만에 최저다. 완전실업자(일할 의사가 있지만 주중 1시간의 유급노동도 하지 못한 이)는 174만 명으로 인구의 1.4%에 불과하다. 한국이 역대 최대 실업자(4월 125만 명)에 19년 만에 최악의 실업률 성적표를 내놓은 것과 대조된다.

‘고용의 질’을 따지려면 근무여건, 고용 안정성, 임금과 복리후생, 교육훈련, 고용 평등, 공정한 갈등해결 시스템(월간노동리뷰, 김정우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 6가지를 봐야 한다. 리크루트에서 발행하는 취업정보 주간지 ‘타운 워크’(무료)를 보면 일본은 업무선택 폭이 넓고 일·가정 양립 가능한 일자리가 많았다. 광고회사 ‘에이블’의 근무시간은 10~ 18시, 10~17시(실제 근무 6시간) 두 종류다. 연간 휴일은 127일(2018년 기준)이다. 근무 안정성을 강조하려고 “직원 평균 근속연수가 10년 이상이고, 이직자가 드물다”며 함께 일하자고 어필하는 회사가 많다. 사원 기숙사를 제공해 사회초년생의 거주 문제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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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만에 최저실업률을 기록한 일본과 19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내놓은 한국의 일자리 시장이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오래 가는 일자리를 소개한 일본 주간지 타운워크. [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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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도 적지 않다. 초밥 체인 ‘스시잔마이’는 셰프 입사 7년 차(34세)에게 연봉 730만 엔(7950만원), 홀에서 접객 업무를 하는 입사 5년 차 매니저(35세)는 연봉 650만 엔이라 소개했다. 교육 훈련도 확실하다. 상업시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보이스’는 “한평생 가져갈 기술을 우리 회사에서 손에 넣으라”고 소개한다. 장비반입·청소에서 시작해 전문 인력이 되기까지 회사가 가르친다. 이토방수공사는 “일을 배운 뒤 독립해 회사 차려도 오케이”라고 했다. 고용 평등도 개선 중이다. 미경험자 환영은 기본, 나이·성별·인종 ‘불문’인 곳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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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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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자리 호황 속엔 일본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는 게 현지의 평가다. 2000년대부터 각종 규제를 없애고 노동 유연성을 높인 일본은 아베 신조 정권 들어 법인세율을 낮추고 엔저(엔화가치 하락)를 유도해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 부담을 줄이도록 도왔다. 여유가 생긴 기업들이 앞다퉈 채용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적절한 일자리 정책은 국가 경제도 바꾼다. 일본 전문가인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자문역은 “일본이 불황의 고리를 벗어난 이유 중 하나가 취업 활성화”라며 “경력단절 여성 등이 일을 시작하고 맞벌이가 되면서 소비촉진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본이 100% 정답은 아니다. 경제 구조와 성숙도가 다른 만큼 단순 비교도 무리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풀 뽑기’식 초단기 공공알바는 답안지에 놓여선 안 될 선택이다. 급하게 늘린 일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간호·보육 등 사회의 니즈가 많은 곳, 인공지능(AI)·빅데이터 전문가 등 기업 니즈가 강한 일자리를 지금부터 만들어 가는 게 낫다. 올해 일자리 사업 예산(13조4000억원)을 고용 장려금, 직접 일자리 사업 등 ‘급한 불 끄기’에만 쓰지 말고 고용의 질을 높이는 직업교육 훈련, 고용 안정 등 ‘장기전’에 써야 하는 이유다.

서유진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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