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견인 자처 70대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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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70대 남성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할머니에게 지급되는 각종 지원금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서울 용산경찰서와 서울서부지검에 따르면 김모 씨(76)는 위안부 피해자인 이귀녀 할머니를 2011년 중국에서 국내로 데려온 뒤 6년간 이 할머니에게 지원된 2억8000여만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 할머니 통장 관리하며 수시로 인출
김 씨는 이 할머니의 계좌를 직접 관리하며 수시로 돈을 인출해 자신의 생활비와 보험료 납부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6년부터 김 씨는 중국에 살고 있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국내로 귀국시키는 일을 했다. 이 할머니도 김 씨의 도움으로 2011년 3월 고국 땅을 밟았다. 당시 이 할머니는 85세였다. 귀국 후 김 씨의 집에서 지내던 할머니는 9개월 뒤인 그해 12월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 결과 김 씨는 2012년 6월 이 할머니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여성가족부에 등록시켰다. 이후 지난해 4월까지 6년간 할머니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할머니의 통장을 직접 관리한 김 씨는 현금인출기에서 수표로 돈을 뽑거나 자신의 자녀 계좌로 송금하는 방식으로 모두 332차례에 걸쳐 2억8000여만 원을 횡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할머니는 여성가족부로부터 특별지원금 4300만 원과 매월 140만 원가량의 생활안정지원금을 받았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도 지원금을 받았다. 김 씨가 횡령한 돈 중에는 일본 정부가 자금을 댄 화해치유재단의 지원금 1억 원도 포함돼 있다.
경찰은 화해치유재단 지원금 1억 원이 지급된 2016년 당시 이 할머니는 의사 표현이 어려웠다는 주치의의 진술 등을 토대로 김 씨가 할머니의 동의를 얻지 않고 지원금 수령을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이 할머니를 면회했던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관계자는 “할머니는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지원금을 받겠다는 의사 표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씨 측은 “이 할머니가 1억 원을 받겠다는 동의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다.
○ 수사 시작 후 이 할머니 아들에게 2000만 원 송금
2011년 말부터 요양원에서 생활했던 이 할머니는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2015년 뇌경색 등이 발병해 거동이 힘들어졌다. 2016년 10월 무렵부터는 기계장치로 수혈을 받으며 생명을 이어갔다. 이 할머니는 이때부터 의식이 흐려져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12월 눈을 감기 직전까지 욕창으로 고통을 호소했다는 게 의료진의 얘기다.
김 씨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 할머니가 있는 요양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병원 관계자는 “할머니가 큰 병원으로 옮길 때 김 씨가 도맡아 처리하는 등 도움을 줬다. 발길을 끊고 돈만 챙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에겐 중국에서 사는 아들이 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한국에는 자주 오지 못했다.
김 씨는 지난해 검경 조사에서 “할머니를 국내로 모셔오고, 간병하면서 개인 돈을 쓴 게 많다”며 횡령 혐의를 부인했다. 이 할머니의 아들도 10일 열린 김 씨의 재판에 김 씨 측 증인으로 출석해 “생전에 어머니께서 ‘김 씨가 어려우니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김 씨는 수사가 시작된 이후 이 할머니의 아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12만 위안(약 2000만 원)을 송금했다. 서로 입을 맞춘 대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지원금을 이 할머니를 위해 썼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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