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무너진다 ⑧ 양날의 칼 ‘예타 면제’
충북선 고속철 등 23개 사업 선정
수혜지선 기대, 지역 갈등 비화
SOC 사업 집중 “총선용” 지적도
“수익성 낮을 땐 지자체 족쇄 될 것”
정부가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 면제사업을 발표한 지난 1월 29일 한 시민단체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예타 면제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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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1일 충북도청에서 열린 ‘충북선 철도 고속화 예타 면제 확정 환영대회’. 이시종 지사는 이틀 전 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 면제사업 발표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1월 29일이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최고의 날이었다”고도 했다. 1조5000억 규모의 이 사업은 도의 숙원이었다. 충남 조치원과 충북 제천을 잇는 충북선(115㎞) 중 청주공항~제천간 87.8㎞ 노선을 개량해 철도 시속을 120㎞에서 230㎞로 끌어올린다.
도는 2011년부터 이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예타 제도는 ‘통곡의 벽’이었다. 2017년 10월 KDI(한국개발연구원) 예비타당성 중간 점검에서 ‘비용 대비 편익(B/C)’이 0.37로 나왔다. 1만원 투입 때 경제 효과가 3700원이라는 의미다. 이번에 사업이 예타 면제가 된 것은 이 지사의 ‘강호축(강원~충청~호남)’ 연결 구상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같은 날 경남도청 입구에는 지역의 숙원 사업인 남부내륙고속철도 예타 면제 확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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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지역 경제에 단기 부양책 ‘단비’
정부의 예타 면제사업 발표가 100일을 갓 넘긴 지금, 선정 지역에서는 경기 부양 기대가 환영 분위기를 대체하고 있었다.
거제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김 모(57) 씨는 “(부산~거제 간) 거가대교보다 고속철도가 관광객 유입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업 불황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지만 내년 말 남부내륙철도 기본 계획이 마련되면 부동산 가격도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에선 철도 고속화가 도 전체 발전과 인구 유입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다. 김대건 청주시관광협회 사무국장은 “고속화 사업이 끝나면 북부권에 편중된 관광산업이 청주와 진천·음성 등 충북 중부권으로 넓어질 수 있다”며 “여기에 청주공항 노선이 확대될 경우 외국인 관광객이 청주에 내려 충주·제천과 강원도 명소를 찾는 관광상품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토 균형 발전을 전면에 내세운 예타 면제사업은 지방에는 가뭄의 단비다. 인구가 줄고 공장이 하나둘씩 문을 닫는 상황에서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만한 단기 부양책은 찾기 힘들다. 지방이 기업·관공서 유치와 더불어 예타 면제 사업 선정에 목을 매는 이유다. 김영민 기획재정부 타당성심사과장은 “1970년대 이후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발전이 계속 이뤄져 왔고 참여정부 때 균형 발전을 외쳤지만, 수도권 집중은 더 심화했다”며 “지역의 열악한 생활 기반을 정부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해 사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2019 주요 예타 면제사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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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예타 면제 규모, MB정부 5년에 육박
그러나 예타 면제의 고삐가 풀린 데 대한 우려는 적잖다. 정부는 지난달 예타 심사 기준을 더 완화했다. 국책 지방 사업의 문호는 그만큼 넓어진다.
1999년 외환 위기 극복 과정에서 도입된 예타는 나라 곳간의 문지기이자 방파제였다. 1999~2017년 685건의 예타를 통해 141조원의 예산을 절감했다(2017년 KDI 공공투자관리센터 보고서).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예타 면제의 봇물이 터지면서 내년 총선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 예타 면제 규모는 61건 53조7000억원으로, 이명박 정부 5년 규모(88건, 60조3000억원)에 육박한다.
예타 면제 사업 자체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토건 국가형 SOC 사업 편중은 그 첫째다. 인공지능과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기에 85%가량의 사업비(20조5000억원)가 이 분야에 투입된다.
‘제2의 4대강’ 사업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은 이 때문이다. 일부 사업은 중복 투자의 우려도 적잖다. 균형 발전을 내세우면서 사업을 지자체별로 균배하면서다. 건국대 김원식 교수(경제학)는 “8000억원이 들어가는 새만금 국제공항은 기존의 광주공항과 중복된다”며 “인근에 청주공항과 무안공항도 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새만금 국제공항을 지으면 공멸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인구 감소세에 수익성 악화 우려
예타 면제사업으로 철도 등 인프라가 구축돼도 문제다. 지방 인구가 감소하는 만큼 이용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인프라의 수익성이 낮아 자칫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충북선의 경우 지난해 이용객 수가 147만여 명으로, 여객분담률이 1.04%에 불과하다. 경부선(42.74%), 호남선(11.7%), 전라선(9.08%) 등 주요 노선의 여객분담률과는 비교가 안 된다.
김 교수는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민간 사업자를 찾기 어렵다”며 “결국 국비로 시설을 만들고, 운영비를 감당해야 한다. 운영을 지자체가 맡아야 하는 사업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 족쇄가 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예타 면제사업이 추진되면서 지역 간 갈등 양상도 일어나고 있다.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은 제천역 경유와 봉양역 경유를 놓고 지역 민심이 엇갈린다. 남부내륙철도 사업 역시 역사를 두고 지자체 간 유치전이 치열하다.
부산·청주=이은지·최종권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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