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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는 건 아니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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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김태형·이동욱 감독, 선수 시절 안타 수 합쳐 775개
김기태 감독 절반 밖에 안돼
현역 시절 주목받지 못했지만 SK·두산·NC 1·2·3위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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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는 모두 6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우승은 1988년이었다. 커크 깁슨의 '대타 홈런'으로 유명하다. 이 전 우승은 1981년. 뉴욕 양키스를 누르고 16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80년 대 다저스를 두 차례 정상에 올려놓은 감독은 같은 인물이다. 그는 감독으로 통산 1599승을 기록했다. 현역 시절 투수였던 그는 메이저리그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토미 라소다다.

2019 KBO리그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상위 4팀은 6할 승률, 하위 4팀은 승률 3할 대에 그치고 있다. 상위 4팀 감독 가운데 3명은 선수 시절 소위 무명이었다. 1위 SK 염경엽(51) 2위 두산 김태형(52) 3위 NC 이동욱(45) 감독은 현역 시절 대단치 않은 선수였다.

반면 7위 KIA 김기태(50) 공동 8위 롯데 양상문(58) 10위 KT 이강철(53) 감독은 명선수출신이다. 염경엽, 김태형, 이동욱 감독의 선수 시절 안타 수(775개)를 모두 합해도 김기태 감독(1465개)의 절 반 밖에 되지 않는다. 홈런 수(19개-249개)는 아예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1994년을 표본 예로 들어 보자. 당시 쌍방울 김기태는 25개의 홈런을 때려 첫 홈런왕에 올랐다. 안타 수는 119개, 타율은 3할1푼6리였다. 그 해 OB(현 두산) 김태형은 타율 2할3푼1리, 홈런 1개, 안타 46개를 기록했다.

태평양 염경엽은 타율 2할1푼2리, 홈런 2개, 안타 74개를 생산했다. 동아대 2학년 이었던 이동욱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내야수였다. 해태 투수 이강철은 1994시즌 12승(1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했다.

양상문은 이미 은퇴한 다음이었다. 양상문은 청보시절인 1987년 12승(13패)을 올렸고, 209⅓이닝을 던졌다. 양상문은 고교(부산고)와 대학시절(고려대) 최고 인기 투수였다. 양상문 감독은 롯데와 LG에서 사령탑으로 7번 째 시즌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까지 3위 이상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김기태 감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2017년 KIA를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밖의 해는 심한 부침을 겪었다. LG 3년 동안 7위-2위-9위(정규리그 기준)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KIA에서의 지난 4년은 한 해를 제외하곤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염경엽 감독은 넥센(현 키움) 4년간 줄곧 A학점을 유지했다. 넥센의 이 전 4년(6위-7위-8위-6위)과 비교하면 경계가 뚜렷하다. SK 단장으로 지난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고, 예정대로 감독에 올라 순항 중이다.

김태형 감독은 집권 4년간 두 차례나 두산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가 팀을 맡기 전 해 두산은 6위에 그쳤다. 지난 해 최하위였던 NC를 3위까지 올려 논 이동욱 감독의 리더십도 충분히 주목받고 있다. 현역 시절 이동욱은 6년간 143경기 밖에 출전하지 않은 선수였다.

토미 라소다 감독은 그의 자서전에서 "늘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였던 탓에 관찰하는 눈을 길렀다. 남들이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경기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뛰어나지 않았던 선수가 명감독이 된 이유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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