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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중남미는 우리 영역"… 여전히 유효한 美 먼로독트린 [월드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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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베네수엘라는 러시아가 간섭할 곳 아냐" / '중남미는 美 영역' 표방한 먼로독트린 연장선 / 그간 프랑스·러시아 등의 중남미 진출 막아내

세계일보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817∼1825년 재임). ‘유럽은 미 대륙에 간섭하지 말라’는 먼로 독트린을 남겼다.


‘미국은 유럽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니 유럽도 미 대륙에 간섭하지 말라. 미국은 유럽 제국이 미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것을 배격한다.’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1823년 12월 미 의회에 제출한 연두교서에서 밝힌 원칙을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 ‘먼로 독트린’(먼로주의)으로 불리는 이 지침은 그동안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 결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당장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 시도를 강하게 성토하는 미국 정부와 군부의 태도에서 먼로 독트린이 여전히 유효함을 읽을 수 있다.

◆볼턴 "베네수엘라는 러시아가 간섭할 곳 아냐"

2일 외신 등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을 따르는 국민과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국민으로 나뉘어 사실상 내전에 돌입한 상태다. 국제사회도 둘로 갈라져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 대부분은 과이도를, 러시아와 중국 등은 마두로를 각각 지지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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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왼쪽)과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그런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이것(베네수엘라)은 우리의 영역”이라며 “러시아가 간섭할 곳이 아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가 속한 중남미 대륙은 미국의 영역임을 분명히 하고 유럽 국가인 러시아의 중남미 개입을 배격했다는 점에서 196년 전의 먼로 독트린을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

사실 먼로 독트린 자체가 러시아를 겨냥해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19세기 초 중남미에선 신생 독립국이 대거 등장하고 러시아는 극동을 거쳐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태평양을 건너 독립 직후의 중남미 여러 나라까지 간섭하는 사태를 차단하고자 일부러 먼로 독트린을 내놓았다는 분석이 정설로 통한다.

먼로 독트린은 1860년대 프랑스가 미국 바로 옆의 멕시코에 진출하려 했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프랑스군은 1864년 멕시코를 점령하고 당시 프랑스 황제이던 나폴레옹 3세의 조카를 멕시코 황제에 앉혔다. 그러자 미국은 먼로 독트린을 근거로 격렬히 항의했고, 결국 기세가 눌린 프랑스는 1867년 멕시코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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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美, 프랑스·러시아 등 유럽의 중남미 진출 막아내

러시아는 이처럼 중남미 국가들을 자기네 영역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태도 자체가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한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주권국가(베네수엘라)의 내정에 대한 미국의 간섭과 이 국가 지도부에 대한 위협은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급기야 미국은 베네수엘라 사태 진화를 위해 군사력까지 투입할 듯한 기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군사작전은 가능하다”며 “만약 그것이 필요한 것이라면 미국은 그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을 대표하는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해병대장)도 의회에 출석해 “우리(군)는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경우 이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중남미에서 외세를 배격할 목적으로 단호한 군사적 행동을 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62년 10월 쿠바 봉쇄다. 공산국가인 쿠바에 러시아(당시 소련)가 미국 본토를 겨냥한 핵미사일을 배치하자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미 해군을 동원해 쿠바 영해를 봉쇄했다. 항공모함 8대를 비롯해 전투함 90여척이 작전에 참여했다.

핵전쟁이 될 제3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점쳐지던 상황에서 러시아가 먼저 한 발 물러섰다. 러시아는 쿠바에 있던 핵무기를 철수시켰고, 미국은 먼로 독트린의 대원칙을 힘으로 지켜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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