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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단독]인천 ‘스쿨미투’ 책으로…“우리 목소리 파도가 되어 성차별 밀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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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학교 성폭력 고발

경향신문

인천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ㄱ양은 학교에서 ‘여학생 몸매’ 평가와 특정 친구를 향한 성희롱을 수차례 경험해왔다. 남학생들은 교사를 앞에 두고서도 성적 농담을 하며 웃었다. 아무도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트위터에 ‘스쿨미투’ 계정이 생기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사흘 만에 교사의 성폭력 사례 10여건이 폭로됐다. 트위터 생성 나흘 뒤 학교 4층 복도 벽면에 교사의 성폭력을 고발하고 피해 학생을 지지하는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었다.

학교 측은 ‘스쿨미투’ 2개월 만에 교사, 학생, 학부모, 여성단체가 참여하는 ‘스쿨미투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성폭력 신고 방법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논의했다. 대책위에 참여한 ㄱ양은 학교가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희망을 얻었다. 가해 교사들은 전보 조치로 학교를 떠났다. 페미니즘을 두고 말을 꺼내는 친구들이 늘었다. ㄱ양은 “우리의 목소리가 이렇게 큰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며 “우리가 다른 피해자에게 용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ㄱ양 이야기는 출간을 앞둔 <우리 목소리는 파도가 되어>(열다북스·사진)에 실렸다. 인천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와 인천지역 학생, 학부모가 지난해 9월부터 이어가는 스쿨미투 운동을 기록한 책이다. 오는 6월10일 출간 예정인 이 책은 학생, 학부모,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스쿨미투’에 관해 쓴 글을 담았다.

‘스쿨미투’ 이후 학생들은 성폭력에 순응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인천의 한 여고에 다니는 ㄴ양은 “교사들이 좋아하는 ‘착한 아이’로 살았다”고 고백했다. ㄴ양은 여학생 외모를 평가하고 ‘술집 여자’에 비유하는 등 성희롱하는 교사들의 말을 참고 넘겼다. 지난해 5월 학교 거울에 “ ‘낙태천국 김밥천국’이라는 표현을 한 선생님에게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포스트잇이 붙은 뒤 ㄴ양은 ‘착한 아이’이길 그만뒀다. ㄴ양을 비롯한 학생들은 남성 교사가 들어올 수 없는 여자화장실 문 안쪽에 포스트잇을 모았다. ㄴ양은 “선생님들에게 사랑받던 이전의 모습보다 할 말은 할 줄 아는 내가 더 좋다”며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 가고 있다”고 했다.

‘스쿨미투’는 대학 입시 때문에 성차별적 교육 환경에 눈감았던 부모의 인식도 바꿔 놓았다. 인천의 다른 여고 학부모 ㄷ씨는 지난해 9월 딸에게 “우리 학교 스쿨미투 터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던 ㄷ씨는 자신의 딸에 대한 내용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배우를 꿈꾸는 ㄷ씨 딸에게 교사가 “여배우는 창녀”라며 “창녀가 되려고 연기하는 것이냐”고 말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후 ㄷ씨는 교육청 조사와 경찰 수사 과정에 의견을 전하고 학교 측의 성평등 교육도 이끌어냈다. ㄷ씨는 “내가 아이들에게 ‘내신등급’만 외치는 무심한 엄마가 돼 있었다”며 “이 세상은 내 자식만 잘 살면 그만인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인천시교육청과 경찰에 따르면 인천에서 스쿨미투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당시 인천 부평구의 한 여중생이 교사로부터 성차별 발언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인천 학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교사의 성희롱, 성추행, 욕설 사례 등을 폭로했다. 중학교 7곳과 고등학교 4곳 등 모두 11개교에서 ‘스쿨미투’가 나와 가해 교사들이 경찰에 입건되고 교육청의 징계를 받았다.

김성미경 인천여성의전화 대표는 “스쿨미투는 학교에서 관행처럼 이뤄져왔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해결해달라는 요구가 피해 당사자인 학생들을 통해 터져나온 것”이라며 “아이들이 삶을 배우고 성장하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목소리는 파도가 되어>는 지난 16일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해 1주일 만에 목표금액인 350만원을 초과 달성했다. 모은 돈은 인쇄와 디자인 등 제작비 마련에 쓰인다. 수익은 모두 인천여성연대에 기부한다. 이 단체는 이 돈을 인천지역 스쿨미투 운동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만들 계획이다.

인천여성연대는 인천여성의전화, 인천여성회,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민우회, 인권희망강강술래, 전국여성노동조합인천지부 등 6개 여성단체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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