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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인도네시아 대선과 모빌리티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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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조코 위도도 현 대통령의 우세를 보여주는 대선 표본개표 결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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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27]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총선, 지방선거와 나란히 치러진 대선이 막을 내렸다. 4월 17일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조코 위도도(조코위) 현 대통령은 야권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운동당 총재를 물리치고 사실상 재선에 성공했다. 헌법상 5년 중임제의 대통령제를 채택한 인도네시아에서 이번 선거는 2014년에 맞붙었던 대통령 후보들 간 재대결이 성사됐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인도네시아 조사 연구소(LSI) 등 여론조사기관들의 표본개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조코위 대통령은 지난 대선의 6.3%를 웃도는 9~10% 득표율 차이로 연임 달성이 확실시된다. 전통적 지지 기반인 젊은 세대와 서민층만큼이나 조코위 대통령의 당선 소식을 반기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정보통신(IT)·모바일 업계 종사자들이 적극적인 환영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것. 자수성가한 기업가 출신 정치인으로서 조코위 대통령이 디지털 경제를 장려하고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도입해 온 덕분이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모빌리티* 분야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2016년 3월 하순 일이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인도네시아 최대 택시회사인 블루버드 택시 기사들이 자카르타 도심에서 애플리케이션(앱) 기반 차량 호출 서비스 업체들을 겨냥해 대규모 시위를 일으킨 하루였다. (2018년 상반기 그랩에 동남아시아 사업 부문을 매각한) 미국의 우버(Uber)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그랩(Grab), 현지 스타트업인 고젝(Go-Jek) 차량 등을 대상으로 한 집단행동이 펼쳐지며 불참 기사들의 택시가 파손되는 현장이 TV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기존 택시 대비 평균 3분의 2가량 저렴한 요금, 호출 승객을 직접 찾아가는 이용 편의성 등을 앞세워 2015년 하반기부터 존재감을 키워오던 모빌리비 스타트업들에 대한 택시 업계의 위기감이 공개적으로 표출된 사건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마침 귀국길에 오르는 날이었던 탓에 늦은 저녁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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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활용해 승객을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그랩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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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들이 대거 길거리로 뛰쳐나왔을 정도로 당시 인도네시아 사회는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둘러싸고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기존 택시 업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디지털 혁신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양측의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조코위 대통령은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 디지털 경제의 중요성에 힘을 실어줬다. 이를 계기로 갈등이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했고, 기술에 친숙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모빌리티 서비스의 편리함과 신뢰성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계속 커졌다. 결국 디지털 서비스가 시대적 흐름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고젝은 인도네시아를 넘어 동남아를 대표하는 유니콘 스타트업(기업 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으로 급성장했다. 반면 2015년 말 2만7900여 대에 달했던 블루버드 택시 수는 2년 뒤인 2017년 말 2만3300여 대로 약 20% 감소했다. 블루버드 택시가 고젝 앱에 자사 차량 호출 기능을 탑재하는 데 동의한 가운데, 대다수 택시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심각한 생존 위기에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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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 자카르타 시내에서 호출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고젝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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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30대를 위주로 모빌리티 앱 없는 인도네시아의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모빌리티 시장의 양대 산맥 고젝과 그랩이 차량 호출을 기본으로 음식 배달과 택배, 전자지갑, 동영상 콘텐츠 등을 아우르는 생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동남아에서 가장 큰 인도네시아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두 스타트업이 경쟁적으로 투자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다양한 서비스가 추가되고 각종 소비자 혜택이 확대되는 것도 반가운 뉴스다. 그래서일까. 번듯한 대기업을 그만두고 그랩 기사로 일하며 시간적 여유를 누리는 30대 남성, 5성급 고급 호텔에 묵으면서 고젝을 통해 식사를 주문하는 20대 여성 등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현재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10% 미만이 모빌리티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독일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의 통계치는 모빌리티 산업의 성장 여지가 충분함을 시사한다. 디지털 시대 도래에 호의적인 대통령과 함께하는 앞으로 5년. 인도네시아 모빌리티 분야가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방정환 아세안비즈니스센터 이사 / '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 사전적으로 '이동성'을 의미하는 모빌리티(Mobility)는 보통 자유롭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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