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최동원이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이유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파이낸셜뉴스

볼티모어 크리스 데이비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볼티모어 크리스 데이비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역투하고 있는 고 최동원. /사진=연합뉴스


마치 영웅의 귀환 같았다. 크리스 데이비스(33·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로커룸에 들어서자 선수들은 일제히 벽을 두들겼다. 데이비스는 양 팔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54타수 무안타라는 메이저리그 신기록이 깨어진 날이었다.

데이비스의 슬럼프는 길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무안타 행진. 2013년 167개의 안타(그 가운데 53개가 홈런)를 때려낸 그는 올 들어 14경기 째 손맛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연봉 2300만 달러(약 262억 원) 특급 선수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260억 원 선수의 부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는 팀 내 최고참이다. 오리올스는 메이저리그서 가장 평균 연령(27.79세)이 어린 팀이다. 선수들은 슬금슬금 그의 눈치를 보았다.

데이비스는 어떤 변화도 거부했다. 그동안 해온 방식대로 배트를 휘둘렀다. 한 가지 차이라면 좀 더 일찍 운동장에 나가 특타를 자원했다. 그러면서 첫 안타를 기다려왔다.

지루했다. 데이비스는 지난 9일(이하 한국시간) 오클랜드전서 유제니오 벨레스의 연속 타수 무안타(46) 기록을 넘어섰다. 그러고도 방망이는 내내 침묵. 11일 경기서는 토니 베르나저드의 57타석 연속 무안타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데이비스는 62타석 동안 안타를 생산해내지 못했다. 비난은 일상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4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원정경기서 1회 안타를 때려냈다. 원정 팬마저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선수들은 로커룸에 들어서는 그를 격하게 환영했다.

볼티모어의 젊은 외야수 세드릭 멀린스(24)는 “그에게서 프로란 무언가를 배운다. 그는 부진했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우리는 그의 턱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며 데이비스를 향해 엄지 척을 해 보였다.

오랜 동안 최동원을 지켜보았다. 그는 103번 경기에서 이겼지만 74번 패했다. 그러나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건방져 보인다는 비난을 들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서 최동원을 상대한 김영덕 당시 삼성 감독은 “독사 머리(꼿꼿하다는 의미) 같았다”며 혀를 찼다. 왜 그랬을까. 그에게 직접 물어 보았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고개를 숙이기 싫었다. 김일융 선배(1984년부터 3년 간 삼성에서 활약한 재일동포 투수· 통산 54승을 기록)를 보면서 내가 옳다는 확신을 가졌다.” 김일융은 한국에 오기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였다.

그러고 보면 김일융이 고개를 숙이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모습을 본 적 없다. 그도 KBO리그서 20번의 패배를 남겼다. 1984년 한국시리즈는 사실상 이 둘의 승부였다. 최동원이 혼자 4승을 올려 유명해졌지만 김일융도 3승을 기록했다.

희비는 5차전과 7차전서 갈렸다. 4차전까지 양 팀은 2승2패. 5차전서 김일융의 삼성이 이겼다. 패전 투수는 최동원. 한국시리즈 유일한 1패였다. 그래도 최동원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롯데가 6차전을 이겨 다시 원점. 승리투수는 최동원이었다.

7차전서 최동원과 김일융이 선발로 나섰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투수 기용이었다. 최동원은 1,3,6차전 승리 투수. 김일융은 2,4,5차전을 쓸어 담았다. 김일융은 4-3으로 앞선 8회 초 유두열에게 3점 홈런을 맞고 마운드를 내려 왔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진 않았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