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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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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웅 방엔 모니터 6대… '데이터 배구'로 기적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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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탑 올라 2번째 챔프전 우승… 男배구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체육관에 카메라 20대 설치해 선수별 공 때리는 자세 등 분석

최태웅(43) 현대캐피탈 감독이 1일 열린 2018~19 V리그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받자 세터 이승원(26)이 달려와 안겼다. 최 감독은 "이뻐 죽겠다"는 미소로 그를 장난치듯 밀어내더니 이내 꼭 안아줬다. 수상 소감에도 이승원이 있었다. "승원이가 (챔피언 결정전에서) 잘해서 뿌듯합니다." 포스트시즌 5전 전승으로 2년 만에 다시 챔피언이 된 그에게 이승원은 '마지막 우승 퍼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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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감독상 받은 최태웅 "부끄럽게 왜 그래~"… '임금님' 파다르도 축하 - V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최태웅(맨 오른쪽) 현대캐피탈 감독이 이승원의 포옹을 장난으로 밀어내고 있다. 둘이서 밤늦도록 흘렸던 눈물과 땀의 무게를 아는 동료 선수들은 박수로 축하를 더했다. 곤룡포를 입은 크리스티안 파다르(23·현대캐피탈·맨 왼쪽)는 베스트 드레서에 선정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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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웅을 울린 이승원

최 감독은 지난달 26일 2018~19 V리그 남자부 우승을 확정 짓고선 울었다. "승원이가 너무 힘들어했는데 못 도와줘서 미안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우승 사흘 뒤 천안 훈련장(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으로 내려가 최 감독을 만났다. 그는 "파다르의 서브 에이스로 챔프 3차전이 끝나던 순간, 이승원과 둘이서 새벽부터 밤까지 배구공 붙잡고 씨름했던 시간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고 눈물의 이유를 밝혔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현대캐피탈의 우승을 점치는 배구 전문가는 드물었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처럼 세터 불안이 가장 문제였다. 최 감독은 기존의 주전 세터 노재욱이 FA 보상선수로 지명돼 이적하자 백업이었던 이승원을 주전으로 낙점했다. 등번호도 최 감독이 '컴퓨터 세터'로 이름 날렸던 6번으로 같았다.

하지만 이승원은 경험 부족으로 실전 경기력이 들쭉날쭉했다. "노재욱을 왜 보냈느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부상도 잦았다. 이승원은 이번 시즌에만 발목 등 다섯 군데를 다쳤다. 그도 작년 10월 연습 중 블로킹하다 손가락이 찢어졌을 땐 "어떻게 잡은 주전 기회인데 이렇게 날려버리나" 싶어 엉엉 울었다. 그는 밤 11시까지 최 감독과 세트 연습 1000번을 더 하는 것으로 불운과 맞섰다. 결국 포스트시즌에서 알을 깨고 나온 이승원은 국가대표 세터 한선수가 버티는 대한항공을 세 번 내리 꺾었다. 최 감독은 "승원이의 잠재력과 성실함을 알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다"면서 "올 시즌 정말 독하게 했다. 내 전성기 때보다도 승원이 훈련량이 훨씬 많았다"고 털어놨다.

◇데이터가 만든 기적

최 감독은 챔프 1차전 때 "기적은 일어난다"는 말로 5세트 역전승을 거뒀다. 기적은 데이터에서 나왔다. 배구 선수의 키와 점프력이 상수(常數)라면, 경기를 분석한 데이터로 변수를 만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배구는 수시로 선수 교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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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가 아닌 전력 분석실에서 '배구 공부' - 최태웅 감독이 지난달 29일 천안 훈련장 전력 분석실에서 이승원과 지난 챔프전을 복기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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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카메라 20대가 설치된 체육관에서 훈련한다. 코치진은 선수들의 코트 위 동선과 공을 때리는 자세, 블로커 위치에 따른 공격 성공률 등을 세세히 따져 선수마다 동작을 어떻게 최적화할지 궁리한다. 정규 경기도 마찬가지다. 상대팀의 특정 선수가 공격할 때 움직임을 컴퓨터로 들여다보면, 선수의 순간 가속도 등 맨눈으로 안 보이는 특징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훈련장 3층 최 감독의 방에는 모니터 6대와 최고 사양 컴퓨터가 따로 있다. 오직 최 감독만 드나들 수 있는, '특급 보안 구역'이다. 최 감독은 이곳에서 밤새 국내외 경기 영상과 기록지를 들여다보고 만들어 낸 파해법(破解法)을 선수들에게 한 줄 요약으로 알려준다. 그는 "챔프 2차전 때 임동혁(대한항공)의 활약으로 우리가 잠시 고전했던 것은, 신인 선수라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최 감독은 벌써 다음 시즌 밑그림 짜기에 돌입했다. 목표는 첫 통합 우승이다. 파다르가 러시아로 이적했기에 5월 트라이아웃 때 다른 선수를 뽑아야 한다. 그의 방에는 국내 대학부터 해외 리그까지 빼곡한 일정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최 감독은 "승원이가 헬멧 쓰고 다닌다면 다음 시즌도 자신 있다"고 했다. "챔프 2차전 때 승원이가 기록석 테이블에 뒷머리를 찧어 정말 아찔했거든요. 그 뒤로 펄펄 날아다니네요. 헬멧 써서 지금 감각을 유지해야 해요."

최 감독의 농담에 이승원이 찡긋 눈웃음으로 답했다.

[천안=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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