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마다 고위공직 인사를 하면서 ‘고향 세탁’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탕평의 대의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인사 공약’의 앞줄에 지역 탕평을 내세우는 이유다. 분명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출신지를 중시하는 전근대적인 인사 관행의 고리를 끊어가야 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살아 출신지 자체가 모호해진 시대 변화를 감안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탕평 인사를 팽개칠 수 없다. 지나친 편중 인사가 초래하는 폐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균형발전과 사회적 탕평을 통해 지긋지긋한 지역주의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악마적인 지역감정에 불을 붙이는 인화성 높은 사안이 인사 차별 시비다. 지역감정을 이용하는 정치 세력에 발판을 마련해 주고, 지역주의 선동의 자양분이 되기 일쑤다. 실제 사실과 유리된 ‘참여정부 호남홀대론’이 어떻게 악성으로 진화해 2016년 총선에서 작동했는지를 돌이켜보면 된다.
지역균형 인사를 계량적으로 평가하는 분석 모델이 있다. 인구 대비 차관급 이상 정무직 진출 비율을 비교분석한 연구다.(<행정논총, 제56권 3호> ‘정무직 공무원의 균형인사’) 정무직 숫자가 인구에 비해 많으면 우대지역(+), 적으면 홀대지역(-)으로 분류된다. 노무현 정부는 영남 3.93%, 호남 2.06%로 영호남이 크게 차이가 없는 우대지역으로 나타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영남 4.76%, 호남 -7.43%로 바뀌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영남 5.68%, 호남 -10.09%로 편중이 극심해졌다. 특정 지역이 지나치게 ‘과소대표’되는 -10% 이하가 나온 것은 이승만 정부 때 호남(-12.42%) 이후 처음이다. 다른 지역의 역대 정부에서 -10%대를 기록한 적이 없다.
민주화 이후 어렵게 진척시켜온 지역차별과 인사편중 개선 지표를 물거품으로 만든 박근혜 정부의 역주행 탓에 영정조 시대의 화두였던 ‘탕평’이 5G 시대에도 과제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기간 수없이 탕평과 통합의 인사를 공약했다. 이런 다짐까지 했다. “장차관 인사 때마다 지역별 비율을 국민께 보고 드리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편중 인사의 유혹을 끊어 내겠다는 뜻이었을 터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정권의 극심한 지역편중은 빠르게 전복되어 정상화되었다. 앞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 1기 내각 당시 문재인 정부는 호남 6.54%, 영남 5.33%였다.
편중 인사 유혹을 버려야 하는 것은 이제부터다.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충성도와 지지기반에 집착하는 인사 수요가 커지기 때문이다. 출신지를 ‘고교 기준’으로 바꾸고서야 ‘3·8 개각’의 탕평을 말할 수 있는 지점이 위험신호일지 모른다. 출신지를 분식한들 명분은 사라지고 세탁의 의도만 뾰족해질 뿐이다. TK(대구·경북)와 충청권 언론 등에서 나오는 뾰족한 언어들이 자극적이다. 탕평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악인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개선된 것만으로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다. “치졸하게” 출신지 세탁까지 하게 된 지금이 초심을 돌아볼 때다. “현 정부 인사에 대해 국민들이 역대 정권을 통틀어서 가장 균형인사, 탕평인사, 통합적인 인사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주고 계신다. 앞으로 끝날 때까지 그런 자세로 나가겠다. 지역탕평, 국민통합 이런 인사 기조를 끝까지 지켜나갈 것을 약속 드리겠다.”(취임 100일 기자회견)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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