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8 (토)

[팀장칼럼] 文정권, 낙하산 유혹 이겨낼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지난 12일 연합자산관리(유암코) 상임감사에 전직 청와대 인사가 온다는 정보를 듣고 취재를 시작했다. 이성규 유암코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대표는 "인사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대표로 계신 회사에 상임감사가 바뀌는데 말씀을 못하시냐"고 묻자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이 회사 2인자 격인 김두일 이사에게 전화했다. "선임 절차가 진행 중인 것은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했다. 주주총회 의장을 맡고 있는 은행연합회 관계자들도 "선임 중이란 얘기만 들었지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실수로 말하지 않는 한 누구도 상임감사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표와 이사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상임감사 인사에 대해 "할말이 없다"거나 "모른다"고 답하다니, 누가 이들의 입을 막았을까. 살아있는 권력이 무서워 스스로 입을 틀어 막았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한 상임감사 내정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출신 황현선씨다. 황 전 행정관은 더불어민주당 기획조정국장 출신으로 지난 대선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장을 지냈다.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다. 구조조정 업무는 물론 금융 경력도 전무하다.

유암코는 국내 8개 은행들이 출자해 설립한 구조조정 전문기관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도 출자했지만, 정부 지분은 없다. 유암코가 탄생할 당시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맞다. 산파(産婆)의 공을 주장할 순 있겠지만, 유암코는 엄연히 은행들이 주인인 회사다. 그런 회사 상임감사에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온다고 하니, 금융권에서는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의구심을 갖는다. 유암코 상임감사의 연봉은 지난해 기준 2억3890만원에 달한다.

시장에서는 청와대 낙하산이 지금부터 아니냐는 걱정이 나온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직원 중 정치에 뜻있는 이들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 출마를 위해 지역구로 달려갔다. 정계 입문에 관심이 없거나, 누군가의 만류로 출마를 포기했거나, 후일을 도모하는 이들이 주로 청와대에 남았다. 정권은 유한하니 이들이 언제까지 청와대를 지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청와대를 떠날 때 ‘한자리씩 챙겨주’는 것이 정치의 생리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공공기관이나 금융권에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총선 다음이다. 총선 낙마자들이 대거 취업시장으로 몰려나오는 시기다. 누구는 정권과의 친분을 들어, 누구는 청와대 혹은 대선 캠프 근무 경력을 들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낼 것이다. 한 금융권 고위 인사는 "총선에서 패배한 여권 인사는 정부로 다시 복귀하거나 공기업 또는 금융권 사외이사로 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낙하산 취업은 힘있는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을 선호하는 공기업·금융사들의 희망사항과 맞물린 결과"라고 했다.

이미 금융업계에서는 금융 유관기관의 대표 자리에 친정권 인사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적폐 청산’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가 이런 시장의 우려를 간과해선 곤란하다. 금융 경력이 없는 39세 전직 청와대 행정관이 민간 금융사 임원으로 발탁된 것을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주변을 경계하고 살펴야 한다.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적폐의 길’을 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송기영 금융팀장(rckye@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