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유학생 시위는 중국식 '관제 민족주의'였다는 비판이 뒤에 나왔다. 1940년대 마오쩌둥이 공산주의를 뿌리내리면서 동력(動力)을 얻으려고 하강 침투식 민족주의를 만들었는데, 그 낡은 흔적을 서울에서 봤다는 것이다. 책 '상상된 공동체'를 쓴 역사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19세기 제정 러시아에서 관제 민족주의의 출발을 찾는다. 왕권이 약해질 때 권력의 정당성을 얻으려고 왕이 민족을 내세우는 관제 민족주의가 싹텄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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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1세 때 러시아 교육대신은 국가 3대 원칙을 러시아정교·전제주의·민족주의라고 규정했다. 앞에 두 원칙은 '정신적 예속'과 차르의 '절대 불가침성'을 강조했다. 그때 민족주의란 '국민을 단일체로 묶는 정치적 유대'를 상상한 것이라고 보는데, 차르가 앞장서면서 '관제 민족주의'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관료와 어용학자도 일을 거들었다.
▶'관제 민족주의'란 말을 엊그제 다시 들었다. '진보 학자'로 평가받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한 세미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3·1절 기념사를 "관제 민족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단언했다. 외교부와 한국국제정치학회가 마련한 행사였는데, 최 교수는 현 정부의 일제 청산 움직임을 "관제 캠페인"이라면서 "지극히 갈등적인 문화 투쟁"이라고 했다. "문 정부는 '관제 민족주의'를 여러 이벤트를 통해 의식화하고 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서너 차례 '빨갱이'란 말을 했던 것에도 최 교수는 "현 정부가 이념적 지형을 자극해서 촛불 시위 이전 못지않게 더 심한 이념 대립을 불러오고 있다. (…) 앞으로 100년간 정치가 발전할 거 같지 않단 생각도 든다"고 했다. 곁에 있던 문정인 외교안보 특보는 "(문 대통령의) 빨갱이 논쟁은 이념 전쟁을 넘어서자는 뜻인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 교수의 현실 진단이 정곡을 찔렀다는 반응이 많다. 정권이 자신감을 잃을 때 '관제 민족주의'로 급히 기운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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