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8 (토)

[일사일언] '부부청대문'집 할머니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이해림·'탐식생활' 저자


끝까지 답을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가령 '부부청대문집은 장사를 이제 하나요?'라는 질문엔 굳이 답을 듣고 싶지 않다.

'부부청대문'은 할머니 두 분이 하던 서울 동대문 인근의 조그만 식당. 쇠고기의 갖은 부위를 듬성듬성 저며 솜이불처럼 덮고 그 아래엔 보들보들한 우거지를 듬뿍 깔아놓은 해장국만 팔던 곳이다. 직접 담근 것이 분명한 향취의 국간장으로 간을 진하게 맞추는데, 쇠고기의 강한 향기와 녹진한 기름, 우거지에서 비롯한 맑은 감칠맛에 어우러진 쨍한 간장 향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루 한두 시간만 문을 열어 고작 서른 그릇 남짓 파는 게 끝이라서 안 그래도 가기 힘든 곳이었는데 몇 해 전부터는 아예 문을 열지 않게 됐다. 마지막으로 전화 걸었을 때 들은 소식이 할머니 중 한 분이 많이 편찮으셔서 몇 달 쉰다는 얘기였다. 혹시나 싶어 무턱대고 찾아가볼까, 전화라도 해볼까 싶다가도 원치 않은 답이 들릴까 두려워 차라리 그리워만 하고 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해방촌 신흥시장 언저리의 '고창집'은 오늘 전화해 봤더니 문을 열었다고 했다. 이촌향도한 부부가 자식 둘 키워내도록 그들의 생업이 되어준 식당이다. 이젠 할머니 홀로 남으셨다. 할머니는 봄마다 황석어젓을 담고 늦가을이면 그 젓갈로 김치를 담는다. 푹 삭힌 묵은지엔 개성 넘치는 투박한 맛이 툭툭 튄다.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식 입맛. 밑반찬 하나하나도 각별하다. 어느 여름날엔 참외무침이 반찬으로 나왔다. 꼬릿한 냄새가 강해 요즘 사람들은 잘 찾지 않는 조기 찌개도 먹을 수 있다.

많은 식당이 요즘 장을 직접 담그지 않는다. 김장조차 거추장스러워 그만뒀다는 집도 많아진다. 젓갈은 사먹는 음식이 된 지 오래. 청결하고 품질이 일정한 대량생산 식재료의 미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집마다 내놓는 맛들이 통폐합되는 것은 안타깝다. 두고 온 시대의 맛이 단절되고, 각별한 맛의 기억이 도태된 과거가 되는 것은 아쉽다. 부부청대문 할머니도, 고창집 할머니도 부디 장수하시길.

[이해림·'탐식생활' 저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