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 파리 패션 쿠튀르 쇼에서 라거펠트는 무대 인사에 나서지 않아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지난 1983년부터 샤넬 디자이너로 일해온 라거펠트가 무대에 오르지 않은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라거펠트는 스트리퍼와 포르노 스타를 모델로 쓰는 파격적인 행보를 걷기도 했다. 이 때문에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가 1993년 그의 패션쇼에서 퇴장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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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라거펠트는 마침내 샤넬에 입성했다. 당시는 샤넬의 창업자인 코코 샤넬이 사망한 지 10년이 지난 이후였는데 샤넬은 코코 샤넬의 생전 명성을 잃은 상태였다. 라거펠트의 샤넬은 새로운 전성기를 누렸다.
라거펠트는2007년 다큐멘터리 ‘라거펠트 컨피덴셜’에서 “내가 샤넬을 맡았을 때 그것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고 아름답지도 않았다”면서 “그녀는 코를 골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패션 하우스에서 일하는 것과 별개로 라거펠트는 자신의 독자 브랜드인 ‘칼 라거펠트’를 만들어 대담한 디자인을 선보여 왔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13세 때 자신의 부모에게 알렸다고 밝힌 라거펠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지만, 사생활은 철저히 비밀로 유지했다.
mj7228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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