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23개 사업, 24조원 규모 공공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예비타당성조사는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에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지 평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왜 이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 부작용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예비타당성조사란 무엇인가요.
▷예비타당성조사는 정부 재정을 대거 투입하는 투자사업에 대해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면밀하게 평가해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기획재정부 장관 주관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공공투자관리센터(PIMAC)에서 수행합니다. 이 제도는 김대중정부 때인 1999년 도입됐습니다. 사업 평가항목은 경제성(35~50%), 정책성(25~40%), 지역균형발전(25~35%) 등입니다. 이 제도 덕분에 1999년부터 2014년까지 재정 절감 효과가 90조원에 달한다는 KDI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타당성을 평가하는 데 드는 시간은 사업별로 보통 14~15개월이며, 대상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는 비중은 약 65%라고 합니다.
다만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은 사업은 사업계획 적정성을 검토받습니다. 이는 사업 시행을 전제로 사업비용의 적정성, 추가적인 대안을 검토하는 제도지만 대부분의 사업은 차질 없이 사업 진행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부가 이번에 예외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발표하며 내세운 논거는 국가균형발전입니다. 경제성 위주로 평가하는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면 각종 자본이 밀집해 경제 효과가 큰 수도권의 신규 사업만 통과할 수 있게 돼 결국 수도권과 지방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정부는 다소 경제성이 떨어지더라도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업을 골랐다고 설명했습니다.
국가재정법에는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은 국무회의를 거쳐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공청사 신·증축, 문화재 복원, 국가안보, 국가 정책사업 등 10개 사유는 상시적으로 면제됩니다.
―과거 정부와 현 정부의 면제 사례는 어떤가요.
▷먼저 이번에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된 23개 사업을 보면,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경상북도 김천에서 경상남도 거제를 고속철도로 잇는 남부내륙철도사업(4조7000억원)입니다. 이외에 울산 외곽순환도로(1조원), 부산신항~김해 고속도로(8000억원) 등이 선정돼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 최대 수혜 지역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문재인정부는 이들 23개 사업, 총 24조1000억원 규모 사업을 포함해 현재까지 모두 53조7000억원(61개)에 달하는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 줬습니다. 정권 출범 만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 박근혜정부의 약 5년간 기록(23조6000억원·85개)을 훌쩍 뛰어넘고, 이 조사를 가장 많이 면제해 줬던 이명박정부의 기록(60조3000억원·88개)에 근접한 상황입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로 인한 부작용은 어떤 것이 있나요.
▷과거 경제성 부족 등을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던 사업 가운데 7개 사업이 이번에 면제 대상으로 선정되며 예산 낭비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많은 세금이 투입됐지만 손님 없이 텅 비어 있던 지방 공항의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마다 1~2개씩 '나눠먹기식'으로 분포돼 있어 정권의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예비타당성조사 항목은 경제성은 물론 균형발전을 비롯한 각종 정책적 필요성을 감안해 평가하는데, 이 조사에서 탈락한 사업이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행된다고 해서 향후 지역균형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사업으로 지역 환경이 파괴될 것을 우려한 환경단체들 반발도 거센 상황입니다.
정부가 꼭 필요한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겠지만 이번 사례가 선례로 남아 곳곳에서 이 절차를 면제해 달라는 요구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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