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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얼음판 휩쓰는 ‘빙탄소년단’ 리더는 임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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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500m 금, 시즌 랭킹 1위

황대헌·김건우·박지원도 정상급

빙상연맹 내분에도 꿋꿋이 훈련

2022 베이징 올림픽 전망 밝아

중앙일보

폭발적인 스타트를 자랑하는 임효준이 2018~19시즌 쇼트트랙 월드컵 500m 시즌 랭킹 1위에 올랐다. 한국 선수가 이 종목 1위를 한 건 성시백(2007~08시즌) 이후 11년 만이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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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올림픽 금메달의 감동은 잊었다. 한국 쇼트트랙의 취약종목인 단거리까지 극복하겠다는 다짐만 남았을 뿐이다.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효준(23·고양시청)이 500m 시즌 랭킹 1위에 올랐다.

임효준은 11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18~2019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6차 대회 남자 5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서 41.314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지난 4일 5차 대회 500m에서도 우승했던 임효준은 두 대회 연속 500m 정상에 올랐다. 500m 18~19시즌 세계랭킹에서도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우다징(중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쇼트트랙은 한국 겨울스포츠의 간판 종목이다. 겨울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 31개 중 24개를 거둬들였다. 1992년 알베르빌올림픽 2관왕 김기훈, 세계선수권 11회 우승에 빛나는 김동성, 2006 토리노올림픽 3관왕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 2010 밴쿠버올림픽 2관왕 이정수가 쇼트트랙 에이스의 계보를 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급격한 하락세를 그렸다. 안현수는 2014 소치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러시아로 귀화했다. 차세대 에이스 후보로 꼽히던 노진규는 골육종으로 빙판을 떠났다. 결국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선 노메달로 대회를 마치는 수모를 겪었다. 그 사이 경쟁국들은 한국의 기술과 훈련법을 익혀 성장했다. 세계 쇼트트랙이 상향 평준화되는 사이 한국만 뒷걸음쳤다.

지난해 평창올림픽에서 한국은 힘겹게 자존심을 회복했다. 임효준이 1500m에서 금메달, 5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이다. 등·정강이·발목을 7차례나 다치고 수술만 세 번 받았지만 끝내 투혼을 발휘해 일궈낸 값진 열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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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헌, 김건우, 홍경환, 박지원(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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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쇼트트랙은 전통적으로 중장거리에 강했다. 뒤쪽에서 여유 있게 레이스하다 막판 추월하는 특유의 방식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하지만 초반부터 전력 질주해 달리는 500m에선 약세를 면치 못했다. 체격이 크고 힘이 좋은 유럽과 북미 선수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500m 올림픽 금메달은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에서 채지훈이 유일하다. 안상미 MBC 해설위원은 “한국은 강점인 중장거리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단거리는 아예 포기했고, 당연히 성적도 좋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효준은 올 시즌 월드컵 시리즈를 앞두고 최단거리 500m에 전력을 쏟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진정한 세계 최강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였다. 매니지먼트사인 브리온의 이나라 팀장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500m에 집중했다. 1000m, 1500m 출전도 줄여가면서 이 종목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키 1m72㎝, 몸무게 63㎏의 임효준은 파워 대신 순발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폭발적인 스타트로 선두로 치고 나간 뒤 철저하게 안쪽 코스를 지키는 전략을 펼쳤다. 초반부터 전력 질주하는 500m에선 바깥쪽으로는 상대를 제치기 어렵다. 임효준은 뛰어난 방어 능력을 살려 연전연승했다. 조해리 SBS 해설위원은 “임효준은 스타트가 좋고 원심력을 활용한 경기운영 능력이 탁월하다.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정도의 단거리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남자 쇼트트랙의 부흥과는 정반대로 한국 빙상계는 초상집 분위기다. 조재범 코치의 폭행 사건 이후 어수선하다. 회장사였던 삼성은 빙상연맹에서 손을 떼고 지원을 줄였다. 지난 9월에는 대한체육회로부터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최민정은 3차 대회에서 발목 부상을 입은 탓에 5, 6차 대회에선 은메달 1개에 머물렀다. 심석희도 감기에 걸리는 등 최악의 몸 상태에서 분전했지만, 메달을 따지 못했다.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 역시 올림픽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달랐다. 5, 6차 월드컵에서 개인전에 걸린 금메달 8개를 모두 따냈다. 임효준을 비롯해 황대헌(20)·김건우(21)·홍경환(20·이상 한국체대)·박지원(23·성남시청)등 젊은 선수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평균연령은 고작 21세지만 기량은 벌써 완성 단계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에 빗대 ‘빙(氷)탄소년단’으로 불린다. 안상미 위원은 “에이스는 없지만, 선수들 전원이 고른 기량을 갖고 있다. 이번 대회에선 한국 선수들끼리 적극적으로 순위 다툼을 하기도 했다. 그런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기량이 크게 발전했다”고 평했다.

다음 달 9~11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은 한국 선수들의 각축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선수 중 세계선수권 최상위 입상자는 2019~20시즌 국가대표 자격을 얻는다. 국제 대회보다 치열하다는 국내 선발전을 면제받을 수 있다. 3년 뒤에 열리는 2022 베이징올림픽 전망도 밝다. 특출한 에이스는 없지만, 선수 전원이 메달을 노릴 만한 기량을 갖췄기 때문이다. 안상미 위원은 “현재 대표팀 멤버는 ‘역대 최고급’이다. 세대교체를 진행 중인 경쟁국들에 비해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될 것”이라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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